꿈과 사랑의 시인 조병화문학관입니다
 
 

제목: 순수고독 순수허무 제891호 (『세월은 자란다』 이후의 이야기들)


글쓴이: 관리자

등록일: 2022-07-05 12:54
조회수: 100
 
152. 나산빌라에서 하루를 묵고, 그 하루를 묵으면서 다음과 같은 시상이 떠올랐다.

     아파트

     몇호 몇호 숫자 하나 달아 놓고
     모두 육중한 철문을 굳게
     닫고들 있다

     침묵, 침묵, 침묵, 침묵, 침묵, 침묵
     침묵, ······
     (1996.2.10. 명륜동 나산羅山빌라 203에서)
    (시집 『아내의 방』에서)

  참으로 무서운 침묵만이 감돌고 있었다. 이것이 현대인들이 살고 있는 아파트 생활 풍경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던 거다. 이러한 생활들을 하고 있으니, 어찌 이기주의가 발달하지 않겠는가. 어찌 사회 불신 풍조가 늘어나지 않겠는가. 어찌 고독한 소외 현상이 일어나지 않겠나.
  다들 닫고 살아가고 있다. 완전히 고립되어서 살아가고 있는 거다. 누가 사는지, 어떻게 사는지, 알 도리가 없다. 서로서로 감시를 당하고 살아가는 것 같다. 현대 문명은 이렇게, 차갑게 차갑게 기계적으로 발달되어 가고 있다. 사람도 기계의 한 부품처럼 끼여서. 이것을 참혹하다 한들 무엇 하겠나. 비극이라 한들 무엇 하겠나, 쓸쓸하다 한들 무엇 하겠나.
  이제 인간은 자연인이 아니다. 기계문명의 한 부품이 되어 버렸다. 자연인으로서 자연이 아니다. 그 자유스러운 자연을 누릴 수가 없게 되어 버렸다. 이 세상에 태어났으니까, 죽을 때 까지 그저 살아가는 거지, 편리하게 살려고 창안해 낸 기계 발명품에게, 오히려 잡혀서 살아가는 꼴이 되어 버렸다.
  인간의 장래가 어떻게 되어갈는지, 진실로 인류의 내일이 있을는지, 이 점에서 나는 늘 비관론자이다. 그 비관론자도 오늘의 이 아파트 문화에 끼여 살게 되었다.
(『외로우며 사랑하며』, 14∼15쪽.)  




    
△ 이전글: 순수고독 순수허무 제892호 (『세월은 자란다』 이후의 이야기들)
▽ 다음글: 순수고독 순수허무 제890호 (『세월은 자란다』 이후의 이야기들)
Copyright 1999-2023 Zeroboard / skin by enFr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