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사랑의 시인 조병화문학관입니다
 
 

제목: 조병화_순수고독, 순수허무 제1호-시작하며 (7월10일)


글쓴이: 관리자

등록일: 2007-07-20 19:22
조회수: 6121
 

2007년 7월 10일 (제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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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 편지를 시작하며...

 

  먼저 오늘 보내 드리는 편지의 이름이자, 편운 조병화 시인(1921~2003)의 화두였던 ‘순수 고독. 순수 허무’ 라는 의미에 관해 생각해 봅니다. '고독'은 우리가 늘 끌어안고 살아가는 어려운 명제입니다. 조금 묵은 생각을 꺼내보면 나의 이름이 불려지지 않는 것이 '외로움'이나 '쓸쓸함'의 감정이라면, 이 '고독'은 자기 이름을 스스로 지우는 행위라 생각됩니다. 그것은 철저하게 혼자서 하는 것이죠.

  조병화 시인은 어느 회고록에서 이 고독과 허무를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인생에 있어서 가장 숙명적인 유산은 고독이라고 느낍니다. 살아갈수록 고독한 존재, 숙명적인 고독한 존재, 그것을 느끼면서, 버릴 수도 없고 탈출할 수도 없는 것이 고독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이것을 순수고독이라고 명명을 하고, 그 순수고독을 수용해야만 했던 겁니다. 그 순수고독을 닦아 가는 작업이 나의 작업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순수고독과, 죽음에서 비롯되는 순수허무를 수용하면서 그곳에서 탈출하려는 노력과 작업이 나의 시 작업인 셈입니다."

  생의 ‘고독’ 과, 그리고 그  ‘고독’  뒤에 항상 수반되어 오는 ‘허무’ 에 정면으로 맞서 그것을 또렷이 응시하고, 예술로 피워낸 조병화 시인

  그의 예술혼.

  매주 화요일 아침, 시인의 음성처럼, 나지막하게 전해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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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詩에 관한 단상(斷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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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는 화려한 것이 아니라 진실한 것이며, 그것은 허영(虛榮)이 아니라 필연(必然)이다.
     그 필연의 멋이다.
                                                                                               -조병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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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운재의 능소화

 

  다시 여름이 돌아와서 나의 시골집 편운재에도 능소화가 한창 만발하고 있습니다. 몇 년 전에 심은 가느다란 줄기도 제법 굵어져서, 그 넝쿨이 지붕 꼭대기까지 올라가서 그 잎새들이 하늘로 하늘로, 너울너울 너울거리고 있는 모습이 장합니다. 그것을 바라다보면서 다음과 같은 시를 한 편 썼습니다.

     지금 나의 가숙(假宿) 편운재엔
     능소화가 한창이옵니다

     보는 사람은 없어도
     보아 주는 사람은 없어도
     생각해 주는 사람은 없어도
     찾아오는 사람은 없어도
     비어 있어도

     능소화는 그저 제 철에 피어서
     하늘에 가득히 너울거립니다  

     가벼운 블라우스를 입은 중년부인처럼
     넓은 속가슴을 활짝 펴 놓고
     풍만한 육체로 하늘에 안겨 있습니다

     아, 세월이여
     흐르는 맑은 바람이여
     순간처럼 머물고 있는 목숨이여

     지금 능소화는 활짝 피어서 너울, 너울
     홀로
     텅 빈 편운재를 안고 있습니다.


  나의 시골집은 경기도 안성에 있습니다. 나의 고향이지요. 산골입니다. 산골의 넓은 벌판이지요. 개울이 흘러서 멀리 송전저수지로 들어가는 곳이기도 합니다. 한적한 곳입니다. 고요하기만 합니다. 이 고요한 시골 마을에 여름 밤이면 개구리들이 하늘 떠가라고 울어댑니다. 이러한 논밭 머리에 집이 서 있고, 이 집을 해마다 능소화는 한치 한치 더 기어올라서 지금은 온통 집을 싸고 있습니다. 그곳에 다홍색깔의 굵은 꽃들이 탐스럽게 피어 오릅니다. 보아 주는 사람은 없어도, 사랑해 주는 사람은 없어도, 찾아오는 사람은 없어도, 그저 혼자서 피었다가 혼자서 사라져 가곤 하는 겁니다.  세월처럼.  인생도 이러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실로 서로 모르고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인생은 그저 살아가는 겁니다. 알아 주는 사람이 없어도, 사랑해 주는 사람이 없어도, 생각해 주는 사람이 없어도, 특별히 도와 주는 사람이 없어도, 찾아 주는 사람이 없어도, 그저 인생은 살아가는 곳에 있는 겁니다. 서로서로 소외감을 느끼면서 외롭게 강하게 견디며 살아가는 것이지요. 이 세상 외롭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 선천적인 고독감을 의지로 이겨내면서 부지런히 자기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지요. 일하는 것으로 타고난 고독감을 이겨내며, 부지런히 살아가는 것으로 인생의 쓸쓸함을 이겨내며 살아가는 것이지요.

  과도한 사랑을 찾지 말고, 과도한 행복을 기대하지 말고, 과도한 욕심을 버리고, 과도한 허영을 버리고, 소박하게, 착실하게, 들뜨지 말고, 낭비 말고, 알차게 살아가는 것으로, 고독감이나 소외감 같은 약한 마음을 이겨내며 살아가는 것이 진실된 인생이 아닐까요. 나도 소외 감이나 고독감 같은 것을 많이 느끼기 때문에 이러한 말이 나오는 겁니다. 나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이지요. 이러한 말을 생각하면서 나는 약한 나를 이겨내곤 하는 겁니다. ‘나를 알아 주는 사람이 없다’는 생각에서 이러한 고독감이나, 소외감이 생겨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세상엔 ‘나를 생각해 주는 사람’이란 그리 많지 않은 겁니다. 남이 알아 주거나 알아 주지 않거나, 그저 인생을 묵묵히 살아가는 곳에 강한 인생이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학생 시절에 ‘나를 찾아오는 사람을 거절하지 않고’‘나를 떠나는 사람을 붙들지 않는다’라는 말을 들은 일이 있습니다만, 요즘 들어서 이 말이 진실로 옳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강하게 살아가는 법, 그것은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곳에 있는 것 같습니다. 기대하니까 외로움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남을 기대하지 말 것, 그리고 그 대신에 나를 기대하며 살 것, 이렇게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마음의 평정을 얻고, 고요한 행복을 아름다운 고독으로 살아갈 수 있는 철학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로지 나를 기대하며 살아간다’라는 철학으로 살아갈 때, 그 많은 고독감이나 소외감을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의 시골집 능소화는 내가 있으나 없으나, 그저 혼자서 너울너울 여름을 살다가 떠나곤 합니다.

 

   
 사단법인 조병화시인기념사업회

 

(사)조병화시인기념사업회는 편운 조병화 시인의 순수 고독, 순수허무의 시세계와 예술철학을 재조명 하고자 몇몇 후학들이 힘을 모아 설립한 단체입니다. 사업회는 조병화문학관 및 편운문학상 운영을 지원하고 계간 『꿈』을 간행하는 등 한국 시문학 발전을 도모하고 이 시대가 잊어가고 있는 '서정성'을 소생시키는 데에도 기여하고자 합니다.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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