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사랑의 시인 조병화문학관입니다
 
 

제목: 순수고독 순수허무 제760호 (시로 쓰는 자서전 세월은 흐른다)


글쓴이: 관리자

등록일: 2021-06-07 17:51
조회수: 295
 
22 미세스와 토스트

        직업 부인 미세스 최가
        쇼 윈도 안에서 밀크와 토스트를 든다
        채권이 찻종 옆에 와 놓인다

        미세스 최는
        전쟁을 연상하기엔
        너무나 귀여운 채권이라고 생각한다

        플라타너스 그늘에
        햇빛이 조는 유월 어느 오후

        하루의 지출과 입금이
        오래간만에
        밀크와 토스트를 대접한다

        입을 벌린 나일론 핸드백 속에서
        사아진 루이스와 담배를 물고 찍은
        남편의 사진이
        미세스 최의 얼굴을 기웃거린다

        군우리 전투에 쓰러진 남편의 소식을
        미세스 최는 가끔 잊어버린다

        슬픈 기억은
        하루만 견디면 사라진다
        플라타너스 그늘에
        햇빛이 조는 유월 어느 오후

        직업부인 미세스 최가
        쇼 윈도 안에서 밀크와 토스트를 든다

        전쟁이 온종일
        토스트 집 쇼 윈도에 기대 선다.

                                         시집 『貝殼의 寢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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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휴전이 될까 말까 하던 무렵, 미 해병대는 크게 중공군에 몰려, 포위되어 함경남도 군우리 전투에서 크게 패전을 하고, 흥남으로 겨우겨우 일대 퇴각을 했습니다.
  미 해병대 창군 이래 한 번도 전투에 진 일이 없다던, 그 해병대가 이곳 엄동설한의 산악전, 중공군과 인민군의 대 인해전술엔 꼼짝 못했던 모양이었습니다. 엄청난 퇴각전으로 매일 매일 광복동 네거리는 그 신문보도, 라디오 뉴스로 시끌시끌했습니다.
  그 무렵, 우리 가난한 예술가들이 자주 출입하던 광복동 복판 ‘금강’ 다방 건너편에 예쁜 경양식 집이 하나 생겼습니다. 작고, 아담한 집이었습니다. 김소운(金素雲) 선생은 이곳을 단골로 해서 이곳에서 글을 쓰기도 했습니다.
  그 무렵, 다방에도 차에 채권이 붙어 나왔습니다. 술집 접대부도 면허가 있어야 했습니다. 이렇게 모든 물건에 채권이 붙어 나왔습니다. 아마 정부의 재정이 심히 곤란해졌던 모양이었습니다. 이러한 지독한 통제 속에서 실로 부자유스러운 생활들을 우리 국민들은 해야 했습니다. ‘생명을 위협’하는 정부, 국가가 어디 있는가, 하는 식으로 우리는 숨 한번 제대로 쉬지 못하고, 모든 것에 그저그저 그날 그날을 견디며 살아 왔던 겁니다. 언제 어떻게 될는지 모르는 ‘내일’ 앞에서.
  어느 날 김소운 선생을 만나려고 그 토스트 집에 들렀더니, 한 말끔히 차려 입은 품 높은 중년 부인이 밀크와 토스트를 고요히 들고 있었습니다. 언뜻 전쟁 미망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도 많은 전쟁 미망인들이 있었으니까, 하면서 직업 부인, 쓸쓸한 직업 부인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군우리 전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든 인생은, 슬픈 것이나, 즐거운 것이나, 다 시간이 지나가면 잊게 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슬픈 기억도 하루만 견디면 사라진다”라는 시구가 머리에 떠올랐습니다.
  이 말은 나에게도 주는 말 같아서 이것을 테마로 해서 이 시를 썼던 겁니다. ‘슬픈 기억도 하루만 견디면 사라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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