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사랑의 시인 조병화문학관입니다
 
 

제목: 순수고독 순수허무 제820호 (시로 쓰는 자서전 세월은 흐른다)


글쓴이: 관리자

등록일: 2021-10-29 13:28
조회수: 72
 
81 첫 작별
   성인成仁이, 성환成桓이를 떠나보내며

너희들이 먼 동남아
남지나해를 우회하여
하늘에서
방콕으로 향하고 있을 무렵
공항에서 작별하고
눈길을 돌아온 할아버지는
무교동 술집에서
바에 걸터앉아
청줄 마시고 있었어

하늘에 높이 떠가는 모습
가물가물
구름을 까마득히 내려다보며
어린 손을 흔드는 모습
가물가물
남쪽 햇살에 가까이
솟아 도는
따스한 너희들의 볼
가물가물

인생은 상봉이며, 작별이며
변화 무상
저린 인연을 살다 가는 거라 하지만
어느새, 할아버지도 이 나이
쓰린 가슴
녹이며 녹이며 술을 마시고 있었어

이제 한 시간 반이면 무인도가 내려다보이리
방콕 앞바다 그 무인도 상공
할아버지도 지났던 그곳
그곳을 너희들이 크게 우회할 무렵
할아버지도 집으로 크게
우회하고 있었어.

                                     시집 『딸의 파이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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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시도 제 24시집 『딸의 파이프』에서 끄집어낸 겁니다. 하나의 기록을 위해서. 이 시가 씌어진 날짜로 보면, 그 날 나의 손녀인 성인(成仁, 3세), 성환(成桓, 2세)이가 외할아버지 김기수(金埼洙) 대사가 대사님으로 계시던 타일랜드 외할아버지 댁으로 떠났던 겁니다. 그 어린 것이. 아무리 인편으로 가는 길이라 하지만.
  그 성인이는 지금(1994.4.) 캘리포니아주 로스엔젤레스 근교에 있는 포모나(Pomona) 대학 3학년이고, 성환은 스탠포드(Stanford) 대학 2학년으로 재학 중이지만, 그 땐 참으로 아찔했습니다. 그들의 아버지, 어머니는 미국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으니까.
  인생 살아가려면 이별과 상봉, 상봉과 이별, 얼마나 많겠는가. 인생은 그렇게 수많은 상봉과 이별, 이별과 상봉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나는 이러한 이별과 상봉을 인생 주제로 삼고 많은 작품을 써 왔습니다.
  어차피 인생이라는 것은 상봉과 이별이니까. 언젠가 나는 ‘작별을 하는 연습을 하며 사세’라는 작품을 썼지만 나는 철저하게 그 작별을 살아갔던 것이 사실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뜨겁게 사랑하면서 한편 보이지 않는 내 마음 한구석에선 그 작별을 뜨겁게 살아왔던 겁니다. 아주 비정하리만치.
  그러하기에 애착을 버리며, 애착심을 승화시키며, 변화하는 것을 변화하는 대로 흘려버리며, 변화하지 않는 그것을 찾아서, 그 변화하지 않는 고독에 철저하게 살아왔던 겁니다.
  고독이 주는 생존의 애수, 그것은 나의 사상의 미학이며, 나의 시세계의 공기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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