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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날
헤르만 헷세
숲가의 가지들은 금빛으로 타오르고
나는 홀로 길을 걷는다
사랑하는 사람을 함께
몇 번이고 걷던 이 길을
좋은 날씨가 계속하는 가을이거니
오랜 동안 마음에 살고 있던
행복된 생각도 서러움도
이제 먼 곳 향기에 녹아 사라진다
잔디밭 태우는 연기 들에 나부끼고
그 곳에서 뛰노는 마을 아이들
지금은 나도 더불어 노래 부른다
노래하는 아이들을 따라 소리를 높여
10월! 가을이다.
이 시는 학창시절에 내가 좋아하던 시의 하나로 헤르만 헷세의 「가을날」이다.
이때엔 항상 생각하는 나의 시, 예전이나 지금이나 같은 생각으로 가을을 산다.
가을엔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걸 시인은 본다. 다른 사람들이 듣지 못하는 걸 시인은 듣는다. 다른 사람들이 느끼지 못하는 걸 시인이 느낀다.
적어도 그래야만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려면 다른 사람이 갖고 있지 않은 눈, 귀, 감각을 가져야 한다. 그 보배로운 눈, 귀, 감각을 일 년 내내 어느 절대자-당신에게 보관해 두었다가 가을이 되어서 다시 그걸 찾아내서 그걸로 어느 절대자-당신이 일 년 내내 만들고, 가꾸고, 이루어 놓으신 걸 두루 투명하게 순례한다는 가을 풍경.
기실 가을은 내면의 세계로 내부의 세계로 스스로가 넓어져 가는게 좋다.
그만큼 적적해서 좋다. 그만큼 충만해서 좋다. 그만큼 침전(沈澱)하고, 투명(透明)하고, 머리나 가슴, 마음이 맑아져서 좋다.
도시의 긴 긴 담을 돌며, 산기슭을 돌며, 잡초 밭을 쏘다니며, 밤엔 별에서 쉬는 영혼의 순례, 이 자기 동반의 일인 여행(一人旅行)을 나는 가을에서 한다. 좀 적적히, 좀 처져서, 마침내 내 인생처럼.
- 「어느덧 가을이외다」 부분,『내일로 가는 길에』, 영언문화사, 1987 pp 216 ~ 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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