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사랑의 시인 조병화문학관입니다
 
 

제목: 순수고독 순수허무 제752호 (시로 쓰는 자서전 세월은 흐른다)


글쓴이: 관리자

등록일: 2021-06-07 17:39
조회수: 256
 
14. 낙엽끼리 모여 산다

        낙엽에 누워 산다
        낙엽끼리 모여 산다
        지나간 날을 생각지 않기로 한다
        낙엽이 지는 하늘가에
        가는 목소리 들리는 곳으로
        나의 귀는 기웃거리고
        얇은 피부는 햇볕이 쏟아지는 곳에 초조하다
        항시 보이지 않는 곳이 있기에 나는 살고 싶다
        살아서 가까이 가는 곳에 낙엽이 진다
        아, 나의 육체는 낙엽 속에 이미 버려지고
        육체 가까이 또 하나 나는 슬픔을 마시고 산다
        비 내리는 밤이면 낙엽을 밟고 간다
        비 내리는 밤이면 슬픔을 디디고 돌아온다
        밤은 나의 소리에 차고
        나는 나의 소리를 비비고 날을 샌다
        낙엽끼리 모여 산다
        낙엽에 누워 산다
        보이지 않는 곳이 있기에 슬픔을 마시고 산다

                                            시집 『하루만의 慰安』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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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늦은 가을이었습니다. 이층에서 자고 일어나 창문을 열고 내려다보니 낙엽이 무수히
땅에 떨어져 있었습니다. 실로 무수히.
  찰나 ‘아, 나는 낙엽을 깔고 잤구나, 낙엽에 누워서 잤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서울고등학교엔 나무들이 많았습니다. 술이 깨면서, 다음과 같은 시가 슬슬 풀려
나왔습니다. 특히 다음 구절이 선명하게 떠오르면서.
  “보이지 않는 곳이 있기에 슬픔을 마시고 산다.”
  학교 학생시절부터 나는 그 보이지 않는 ‘미지의 세계’를 더듬어 살아왔던 것이 아닌가.
  보이는 이 세계에서 보이지 않는 저 세계로.
  그것이 이렇게 해방이 되고선 엉망진창으로 조국의 현실이 나를 실망케 만들고, 그 길을
막아 버린 것입니다. 어지럽게. 좌익이다. 우익이다. 통치다. 신탁 통치다, 이러한 생존의
먼지로.
  그렇게 완장을 달고 떠들어대는 정치꾼들이, 애국 열사들이, 애국자들이, 모두 내 눈엔
불쌍한 낙엽들같이 보이곤 했습니다. 세계정세에 비추어 실로 눈물겨운 불쌍한 동포들로만
보였던 겁니다. 알맹이 없는 애국, 실속 없는 애국, 허위에 가득찬 애국, 한마디로 사기꾼들
처럼 보이곤 했던 겁니다.
  얼마나 불쌍한 낙엽들인가. 지금 그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창피하게 날뛰던
그날을 지금 반성하면서 진실한 애국으로 지금 살아가고 있다면 그것으로 다행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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