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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4. 1996년 3월 25일 일본 동경 가신샤(花神社)라는 출판사에서 나의 번역시집 『雲の笛(구름의 피리)』 50권을 보내왔다.
참으로 아름답게 시집이 장정되어 있어서 마음이 놓였다. 초교를 볼 때만 해도 번역이 어수선해서 포기를 하려고 했었지만, 출판사에서 이미 번역료를 지불했기 때문에 출판을 꼭 해야 한다고 해서, 내가 많이 손질을 하고 출판사 측에서 그것을 다시 손질을 한 거다.
출판되어 온 책을 열어 가면서, 한 편 한 편 읽어 내리니까, 그런 대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다. 번역이 이렇게 어렵다는 것을 새삼 느끼면서, 다시 생각하고 다시 생각했다. 특히 시의 번역에 있어서. 시는 뜻의 전달뿐만 아니라, 그 시어들이 풍기는 냄새들이 있어서 이 냄새까지 다른 나라의 말에서 찾는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한국말의 냄새와 일본말의 냄새가 아무리 번역을 잘 해도 완전히 같아질 수가 없을 것이다.
말의 역사는 그 나라의 오랜 역사의 냄새인 거다. 국토의 냄새와 민족의 냄새와 그 국토와 민족이 겪어 내린 오랜 생활사의 냄새. 그것들이 묻어 있는 그 나라 그 민족의 피의 냄새, 땀의 냄새, 얼의 냄새인 거다. 이러한 냄새까지 번역해 낸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할 것이다. 단순한 의미 전달이나, 내용 전달은 될 수 있다 해도. 그러나 시는 그 내용 의미 전달만 가지고서는 그 시의 생명을 살릴 수가 없는 거다.
(『외로우며 사랑하며』, 28~2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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