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사랑의 시인 조병화문학관입니다
 
 

제목: 조병화 순수고독 순수허무 제270호 공존의 이유ㆍ12


글쓴이: 관리자

등록일: 2012-11-08 11:02
조회수: 2993
 
공존의 이유ㆍ12

깊이 사귀지 마세
작별이 잦은 우리들의 생애

가벼운 정도로
사귀세

악수가 서로 짐이 되면
작별을 하세

어려운 말로
이야기하지
않기로 하세

너만이라든지
우리들만이라든지
이것은 비밀이라든지
같은 말들은
하지 않기로 하세

내가 너를 생각하는 깊이를
보일 수가 없기 때문에

내가 나를 생각하는 깊이를
보일 수가 없기 때문에

내가 어디메쯤 간다는 것을
보일 수가 없기 때문에

작별이 올 때
후회하지 않을 정도로 사귀세

작별을 하며
작별을 하며
사세

작별이 오면
잊어버릴 수 있을 정도로

악수를 하세.

시집 『공존의 이유』에서

    남자끼리의 우정, 그곳에도 배신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특히 공명심이나, 출세욕이 강한 벗들에겐 이러한 성향이 많은 것을 알았습니다.
   이 무렵 나는 아주 가까운 벗에게 심취되어 매일같이 술을 같이 마시러 다녔습니다. 그런데 어느덧 이 친구가 나의 영역을 어지럽게 침범해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친구간의 정을 끊어 놓기도 하고.
   어느 날 나는 혼자서 술을 마시고 있었습니다. 술이 어지간히 나를 취하게 하고 있을 때 ‘너무 깊이 사귀었구나, 가볍게, 실로 담담하게 사귈 것을.’ 하는 생각이 들면서 서운하기도 하고, 쓸쓸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고, 한없이 외롭기도 하면서 다음과 같은 싯구절이 머리에 떠올랐습니다.
  ‘깊이 사귀지 마세 가벼운 정도로 사귀세’
   이것을 토대로 해서 단숨에 이 시를 술을 마시면서 작성을 했습니다. 실로 변화무상한 이 세상에 믿을 것이 어디 있습니까. 변화하는 것을 믿는다는 것은 더 외로움을 초래할 뿐입니다.

...(중략)

   변하는 세상에서 변하지 않는 나의 영혼을 찾아서.

『시로 쓰는 자서전: 세월은 자란다』, 문학수첩, 1995, pp 13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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