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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조병화 순수고독 순수허무 제323호 낙엽-구르몽


글쓴이: 관리자

등록일: 2013-11-06 14:12
조회수: 2786
 
낙엽

                                             레미 드 구르몽


  시몬, 나무 잎새 떨어진 숲으로 가자
  낙엽은 이끼와 돌과 조롱길을 덮고 있다

  시몬, 너는 좋아하느냐, 낙엽 밟는 발자국 소리를?

  낙엽 빛깔은 정답고 쓸쓸하다
  낙엽은 덧없이 떨어져서 땅위에 있다

  시몬, 너는 좋아하느냐, 낙엽 밟는 소리를.

  가까이 오라, 우리도 언젠가는 가련한 낙엽이리라
  가까이 오라, 벌써 밤이 되었다. 바람이 몸에 스민다

  시몬, 너는 좋아하느냐, 낙엽 밟는 소리를






  나의 출퇴근길은 우리나라의 네 계절을 그대로 충분히 맛볼 수 있는 좋은 환경에 있다.
  요즘은 그 출퇴근길이 온통 짙은 가을이다. 산엔 가을 물이 들고 가로수는 가로수대로 나날이 나뭇잎이 색깔을 달리해 가고 있다. 특히 중앙청 앞 은행나무 노란 낙엽은 인상적이다. 노란 대륙을 연상케 하는 아름다운 낙엽군이다. 내려서 저런 곳을 한 번 밟아 보았으면 하는 충동이 일어난다. 그 만큼 우리 도시인들은 자연을 모르고 지내고 있다. 자연과 친숙해져 살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잃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인간도 자연의 한 부분, 실로 그 자연 속에서 또 하나의 자연으로 살아가야만 건강한 생활을 유지할 텐데, 누구나 할 것 없이 현대인들은 너무나 생활하기에 분주해서 이 아름다운 대자연을 잃고 살아가는 것이다.
  바람에 날리는 낙엽을 보는 순간, 문득 중학교 시절에 좋아하던 구르몽(Remy de Gourmont)의 시가 생각났다.
  그렇다, 우리 직장인들은 이러한 낙엽 밟는 소리를 잃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것은 반성해 볼 일이다.
  한정되어 있는 우리들의 생명, 그 한정되어 있는 생명을 살아가는 짧은 인생을 직장의 일에만 매달려 살다간 실로 녹이 슬어 삭아서 사라져 버리는 기계의 한 부품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닌가. 직장의 일은 직장의 일대로 충분히 그 책임을 다하고, 쉬는 날, 혹은 쉬는 시간엔 적어도 구르몽 같은 시정에 젖어들 필요가 있는 것이다. 시를 쓰지 않더라도 그 시정에 생존의 긴장을 풀 필요가 있는 것이다. 시와 자연, 그것은 우리들의 긴장된 생존을 풀어 주는 푸른 목장이라 하겠다.

- 「가을, 시를 읽는 그 여유로」 부분,『내일로 가는 길에』, 영언문화사, 1987 pp 257 ~ 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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