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사랑의 시인 조병화문학관입니다
 
 

제목: 순수고독 순수허무 제747호 (시로 쓰는 자서전 세월은 흐른다)


글쓴이: 관리자

등록일: 2021-06-07 17:30
조회수: 160
 
9. 추억

        잊어버리자고
        바다 기슭을 걸어보던 날이
        하루
        이틀
        사흘

        여름가고
        가을 가고
        조개 줍는 해녀의 무리 사라진 겨울 이 바다에

        잊어버리자고
        바다 기슭을 걸어가는 날이
        하루
        이틀
        사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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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일 같이 계속되는 내 인생에 대한 회의와 좌절로, 부끄러운 일이었지만 자살을 늘
생각하면서 살았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 세상에서 사라지나, 하는 생각으로, 매일을
살아가면서 제일 먼저 버려야 하는 것이 애착이었습니다. 애착이라는 것처럼 무거운 짐은
없는 것 같았습니다. 죽으려면, 자살을 하려면 먼저 그 무거운 짐, 애착이라는 것을 버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것을 버리기 위한 매일 매일의 생활이 계속되어 갔습니다.
  이 「추억」이라는 작품은 그러한 생각, 그러한 생활, 그러한 회의 속에서 자연히 나온
겁니다. 지금까지 나에게 소중히 따라붙어 있었던 고귀한 자존심, 그 자부심, 그 우월감
같은 정신상태를 완전히 버리고, 가장 낮은 곳으로 기어 내려가는 연습을 하기 시작을
했던 겁니다. 참으로 비굴한 생각이 들었지만, 그렇게 해야 해방이 된 조국을 살아갈 것
같았습니다. 모든 것이 아니꼽고, 꼴불견이고, 화가 나는 것들뿐이었습니다. 모두들 잘난
사람들이고, 못난 사람은 나 같은 놈밖엔 없는 것 같았습니다.
  좌익을 소리 높여가며 떠들고 있는 무리들이나, 우익을 소리 높여가며 떠들고 있는
무리들이나, 나에겐 실로 우습게 보이고, 불쌍하게 보이고, 눈물 나게 보이곤 했지만,
그들 틈에서 우리 같은 소리 낮은 양순한 무리들은 실로 무섭기만 하고,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에게 속하지 않은 우리 같은 무리들을 그들은 중간파니,
기회주의파니, 회색분자들이니, 도피주의자들이니, 무능력파니, 이렇게 매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꼴을 보고 살자니, 참으로 서럽기가 짝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큰 소리로
애국을 부르짖던 그 무리들, 지금 가끔 길에서 보면, 처량하기 짝이 없습니다. 애국을
소리 높여가며 떠들었던 그들이 실은 애국을 빙자해서 나라에서 이익을 차리려던 무리들이
아니었던가. 어느 시대나, 뿌리 없는 애국자들은 그러한 정상배들인 겁니다. 참으로
그들에게 많이도 시달리면서 견디어야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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