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사랑의 시인 조병화문학관입니다
 
 

제목: 순수고독 순수허무 제745호 (시로 쓰는 자서전 세월은 흐른다)


글쓴이: 관리자

등록일: 2021-06-07 17:27
조회수: 150
 
7. 소라

        바다엔
        소라
        저만이 외롭답니다

        허무한 희망에
        몹시도 쓸쓸해지면
        소라는 슬며시
        물 속이 그립답니다.

        해와 달이 지나갈수록
        소라의 꿈도
        바닷물에 굳어간답니다

        큰 바다 기슭엔
        온종일
        소라
        저만이 외롭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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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시가 극심한 꿈의 좌절로 방황하던 해방 직후에 나를 구출해 준 최초의 시입니다.
실로 그것은 나의 어둡던 시절의 정신의 구원이었습니다. 영혼의 탈출이었습니다.
  그 때 나는 나의 모교인 경성사범학교에서 물리 선생을 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경성사범학교는 보통과 5년, 본과 3년, 이렇게 과정이 나누어져 있었습니다. 그것이
나중엔 예과 5년, 본과 3년, 이렇게 명칭이 바뀌어가다가, 승격을 해서 국대안 속으로
사범대학으로 되어 갔습니다. 그러니까 사범대학 4년, 부속고등학교 5년, 이렇게 굳어져
가고 있었습니다.
  매일처럼 국대안(國立大學案) 반대의 데모, 찬성의 데모, 사회적으론 신탁통치 반대
데모, 신탁통치 찬성 데모, 실로 나라 안이 큰 소리로 수라장이 되고 있었습니다. 이
속에서 나는 학생들에게 먼 날의 꿈을 생각하라는 태도로 물리를 가르치면서 문학
이야길 참으로 많이 했었습니다.
  그러면서 나는 내 자신의 갈 길에 심한 회의와 좌절을 느끼기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물리화학, 그 나의 전공을 계속할 수 없는 환경, 실험실도 없고, 연구실도 없고, 교수도
없고, 오로지 물리 교사라는 직업적인 수업만 있었을 뿐, 나의 업적, 나의 흔적, 나의
노력이 남겨지는 연구나, 실험은 하나도 할 수 없는 상황 속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저
있는 건 일본인들이 쓰다 버리고 간 파괴된 실험실, 텅 빈 연구실뿐이었습니다.
  나는 환경의 폐허 속에서 쓸쓸한 나머지, 그 쓸쓸한 시를 쓰기 시작했던 겁니다. 시를
썼다는 것보다 시가 저절로 나와 버렸다는 것이 더 적절한 표현인지 모르겠습니다.
  이 시도 그렇게 인천 월미도를 배회 하던 중, 바닷가에 있던 소라를 보고, 꼭 나와 같은
처지에서 생존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나의 자화상처럼 그렇게 표현해 본 겁니다.
  거센 파도에 밀려, 그 위험에 밀려, 그 공포에 밀려가면서, 그 생존의 현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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