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사랑의 시인 조병화문학관입니다
 
 

제목: 순수고독 순수허무 제741호 (시로 쓰는 자서전 세월은 흐른다)


글쓴이: 관리자

등록일: 2021-06-07 17:19
조회수: 163
 
3. 이동하면서

그러다가 어느 해, 소년은 고향을 떠나
어머니를 따라 큰 도시로 갔다.
화창한 봄날

도시로 가선, 처음 본 기차의 놀라움,
그 감격으로 먼저 기차 기관사가 되려고 했다
매일 매일을 기차가 지나가는 언덕에서
먼 곳으로 가는 기적소리를 듣곤 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 교실에서, 별에 관한
이야기를 담임선생에게서 들었다
특히 카시오페이아 성좌의 이야길 듣곤
소년은 황홀했던 나머지
기차 기관사가 되려던 꿈을 버리고
별을 공부하는 사람이 되겠다고 했다

매일 매일을 운동장 끝머리에
‘별’이라는 한 글자를 남이 모르게
흙에 새겨놓고 다시 덮곤 했다
그리고 다음날, 다음날 다시 펴보곤 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 『퀴리부인전』을 읽었다.
읽다가 “자연과학자의 길은 쓸쓸한 갑충(甲虫)의 길이다.”라는
퀴리부인의 말에
청년이 되어가던 소년은
말할 수 없는 향수를 느꼈다.

그날부터 청년이 되어가던 소년은
별을 버리고 미세한 신비의 세계로 매혹되어 갔다.
‘쓸쓸한 甲虫’처럼

얼굴엔 제법 여드름이 솟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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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경부선 오산역에서 난생 처음으로 기차라는 것을 보았습니다. 나는 하두
놀라서 어머님 치마폭에 얼굴을 확 묻었습니다. 그만큼 무섭고, 신기했던 것입니다.
  그 무섭고 신기한 긴긴 괴물을 끌고 다니는 기차 기관사가 참으로 위대하게
보이고 멋있게 보였습니다.
  그 때부터 나는 기차 기관사가 되고 싶었습니다. 서울에 올라와서 틈만 있으면
기차를 보러 서울역(당시 경성역)으로 갔습니다.
  이런 일이 있은 후, 몇 년 후였던가 별에 관한 수업을 들었습니다. 그 무수한 별의
이야기, 은하수의 이야기, 성좌에 관한 이야기, 북극성, 북두칠성의 이야기, 그것들에게
얽혀있는 신화 이야기들, 참으로 신비하게, 그리고 재미있게 들었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카시오페이아’ 성좌에 관한 사랑 이야기가 참으로 나를 아름답게
흥분시켰습니다.
  그로부터 나는 별을 공부하는 사람이 되겠다고 마음을 고쳐먹고, 운동장 끝머리
한 귀퉁이에 ‘별’이라는 글자를 새겨서 흙으로 다시 덮어두곤 했습니다.
  그것이 어린 마음으로 일종의 다짐이며, 결심이며, 스스로 스스로에 대한 맹세인
셈이었습니다. 수업이 끝나면 남몰래 그곳에 가서 입으로 훅훅, 불어가며, 다시
나타나는 그 ‘별’자를 만져보곤 했습니다.
  그렇게 지내다가 우연히 『퀴리부인전』을 읽게 되었습니다. 실로 그 엄청난 노력에
놀랐습니다. 그리고 그 진실한 면학의 태도에, 그리고 그 신비한 물질의 세계에.
  그날부터 나는 그 감격에 말려들어 퀴리부인 같은 훌륭한 자연과학자가 되었으면
하면서 나의 어린 꿈의 방향을 별에서 미세한 물질의 세계로 돌려 놓았습니다.
경성사범학교 4학년 시절.
  웬일인지 그 ‘쓸쓸한 갑충(甲虫)의 길’이라는 사색적인 말에 매혹되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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