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사랑의 시인 조병화문학관입니다
 
 

제목: 조병화의 순수고독 순수허무 제731호


글쓴이: 관리자

등록일: 2021-06-06 18:41
조회수: 89
 
시드니

  1977년 12월 11일부터 19일까지 시드니에서 제42차 국제 P.E.N. 클럽 대회가 이었다. 나는 이 대회를 계기로 수차례 세계 여러 나라를 여행했지만 적도 선을 넘어서 남반구까지 내려가 본 일은 없었다. 그래서 이번 시드니 대회에는 색다른 기분으로 참석했던 것이다. 시드니까지 타일랜드 비행기를 탓다. 할인을 해준다고 해서 그걸 탄 거다. 비행기 위에서의 서비스는 참으로 술이 많이 주는 게 특색이라 할까. 아무튼 여러 가지 술을 달라는 대로 준다. 그러니까 우리처럼 술을 즐기는 여행자들에겐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서울에서 마닐라로, 마닐라에서 방콕으로 방콕에서 장장 10시간을 멜보른까지 떠가야 했다. 이것이 지루했다. 그리고 멜보른에서 시드니까지 약 2시간을 더 떠가야 했다.
  시드니는 여름이었다. 바람이 많이 부는 여름이다. 서울에서 출발할 때는 눈을 맞아가며 뜬 겨울이었는데, 이곳 시드니는 한 여름이었다. 겨울옷을 여름옷으로 바꿔 입어야 했다.
  이번 회의는 약 30개국, 회원 약 2백50명가량이 참석한 빈약한 회의였다. 테마는 「동서문학의 가교로서의 문학」이었지만 투옥작가 문제 인권문제가 시끄럽게 거론되었다.
  나는 이곳 시드니를 영국계통의 문화권에 속하고 있기 때문에 대단히 보수적이며 신사적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개방적이며. 노출성이 심한 걸 보고 놀랐다. 더구나 제일 번화가라는 킹스•크로스라는 거리는 그대로 섹스의 거리였다. 성인영화관이 줄지어 있고, 대낮에도 매춘부들이 자기 자릴 지키고 서 있는 게 아닌가. 렁던이나, 프랑크푸르트나, 뉴욕같은 도시에서도 볼 수 없는 자유, 그대로의 성의 거리였다. 피곤할 정도로.
  그리고 ‘누드•비치’가 여러 곳에 있었다. 왓슨•베이가 그 하나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홀딱 벗고 뒹구는 모래사장, 참으로 별천지가 아닌가. 사진으로만 보던 그 광경을 이곳에서 실지로 보았던 거다. 그런데 실제로 보니까, 그게 그리 별스러운 게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극히 자연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건강한 자연풍경으로.
  이곳에선 선상관광(船上觀光)이 멋있다. 세계 3대 미항의 하나라는 말이 있듯이 자연적인 항만시설의 조건이 좋을뿐더러, 그렇게 자연히 아름다울 수가 없다. 배를 타고 두 시간 또는 세 시간씩 도는 여러 가지 관광 루트가 있지만 될 수 있는 대로 많은 시간을 이 선상에서, 해상에서 보내는 게 좋다. 그 검푸른 바다물결, 한없이 펼쳐있는 하늘, 그 하늘에 떠 있는 무수한 갈애기, 그리고 하얀 구름, 살결을 보드랍게 감싸주는 바다의 미풍(微風) 그리고 세계 여러 나라에서 구경 온 여객들, 그와의 대화, 마음껏 청춘과 그 여수(旅愁)를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유명한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바로 옆에서 배가 떠나고 배가 돌아온다. 이 ‘시드니 오페라하우스’는 큰 조개껍질을 상징하여 만든 거대한 건물이다. 이것이 하버•브리지를 배경으로 시드니시의 절경을 이루고 있다.
  하늘과, 바람과, 나체, 그 개방된 곳에 시드니는 풍성한 여인처럼 살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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