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사랑의 시인 조병화문학관입니다
 
 

제목: 조병화의 순수고독 순수허무 제728호


글쓴이: 관리자

등록일: 2021-06-06 18:38
조회수: 86
 
공산권 여행 • 2
- 시와 그림으로 본


  소련을 위시해서 동구라파 여행이 얼마나 어려운가. 특히 우리나라 사람으로서. 그러나 그것이 오늘날에 있어서는 서서히 동구의 자유화 물결과 정부의 북방정책에 힘입어 웬만하면 여행이 가능하게 되었다.
  우리 일행은 여행사(해외관광)의 치밀한 알선으로 쉽게 이 어려웠던 소련, 동구라파 여행을 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나는 수많은 해외여행을 했지만 이번 여행은 참으로 어린 아이처럼 기뻤었다. 많은 호기심도 있었고.
  우리 일행은 우선 동경으로 먼저 출발을 했다. 1989년 4월 22일이었다.
  동경 나리따공항 근처에 있는 나리따 뷔 호텔에서 일박을 하고 23일 모스코바를 향하여 그 긴 여행을 시작했던 것이다. 스칸디나비아 에어 라인.  동경으로 떠난 비행기는 일본 니이가디 하늘을 날아 시베리아 하늘에 접어들어 갔었다.
  시베리아 하늘에서 내려다 보는 동토 시베리아를 다음과 같은 시정으로 읊어 보았다.

    동경에서 모스크바까지 줄곧
    은박지를 구겨놓은 거 같은
    눈 덮힌 대륙을 건너간다.

    그곳엔 닥터 지바고의 초원도
    노란 꽃밭도 없었다.

  이렇게 그저 눈덮힌 시베리아 대륙이었다. 군데군데 나무들이 울창한 숲들이 있었고 얼어붙은 뱀 줄기 같은 기운 빠진 개울•강들이 꾸불꾸불하고, 경치란 곤 하나도 없었다. 이런 하늘을 열 몇 시간 가서 목적지인 모스크바 한적한 공항에 내렸다. 공항은 기대에 어긋나게 아주 작았었다. 주위의 나무들이 과연 북극이구나 하는 인상을 강하게 주었었다. 자작나무, 그 자작나무 하얀 피부들이 대단히 이색적이었다. 자작나무들이 밀집하고 있었다.
  여행사 사람들이 해 주는 대로 공항수속을 다 마치고 버스에 올라타 예약된 호텔 코스모스로 갔다.
  코스모스는 꽃 이름이 아니라 ‘우주’라는 뜻이었다. 소련이 자랑삼아 우주공간에 쏘아올린 코스모스 우주선, 그것이 불행하게도 희생자를 낸 그 추도 기념으로 이 호텔 앞에 무지무지하게 큰 동탑이 세워져 있었다. 나는 그 기념탑 공원에서 다음과 같은 시와 그림을 그렸었다.

    호텔에서 내다보는 모스크바 시민들,
    아침이면 개미떼들처럼
    지하철로 내려 간다.

    이곳이 하늘로 치솟은 코스모스
    기념광장이다.
         -  「코스모스 기념탑공원에서」

  모스크바에서 2박3일을 하는 동안. 그 유명하다는 모스크바 붉은 광장 레닌의 무덤, 크레물린 궁, 공식적인 장소를 둘러보고 지하철을 구경했다. 한없이 땅 밑으로 쏜살같이 에스컬레트를 타고 내려갔지만 그 급경사에 놀랐었다. 떨어질 것만 같았다. 소리들도 요란하고, 실용용이지 미적 효과는 그리 없는 것같이 나는 느꼈었다.
  그리고 모스크바대학 캠퍼스를 돌아보았다. 그 언덕에서 모스크바 시가지를 내려다보는 경치는 실로 대단했다. 눈 아래를 모스크바 강이 흘러내리고 대학건물은 소위 소련식 석탑의 고층 건물들이었다. 이곳에서 배운 학생들이 소련은 물론 전 지구 공산국가들의 요직을 맡아보고 있는 지도자들이 아닌가. 그렇다 대학이라는 것, 학교라는 것은 건물이 문제가 아니라 어떠한 사람이 나왔는가에 달려 있는 것이다. 인물, 인간 그것이 중요한 것이지 건물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좋은 인물을 배출시키는 학교가 좋은 학교라는 말이다.
  나는 그 모스크바대학 언덕에서 다음과 같은 그림을 그리고 시를 썼다.

    모스크바 강이 흐르고 있다
    강가는 숲
    웅대한 자연, 웅대한 도시
    그곳에 정치라는 것이 있었다.
    집단이라는.
         -  「모스크바대학 앞에서」

  거리엔 그저 힘없는 사람들이 다니고 있는 인상이었다. 활기라는 것을 볼 수가 없었다. 술집(주로 맥주)은 밤에 대성황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모두 셀프서비스라, 한 조끼 마시곤 또 자리를 떠서 카운터에 가서 사가지고 와야 하는 불편이 있었다. 이런 현상은 공산국가에선 어디 건 그러했다. 도대체 서비스라는 것이 없었다. 우리나라 같은 자유 국가에서 서비스만 받아 오던 습관으로서는 대단히 불편했다.

  이곳 모스크바에서 대충대충 보고 우리 한민족들이 많이 살고들 있다는 우즈베크의 타시켄트로 갔다.
  넓고 넓은 대륙, 참으로 유연한 농장들이었다. 이곳 집단농장 관리인은 조선족 2세였었다.
  자유시장엔 참으로 조선족 아주머니들이 많이 보였었다. 김치, 깍두기, 야채, 과일, 꽃들을 팔고 있었다. 우리말도 잘들 했다. 고국이 무척 그립다고들 했다. 팔던 김치를 공짜로 주기도 했다. 그리고 이곳 타시켄트대학 한국어과 학생들과 교수들하고 좌담회를 대학 강당에서 가졌었다. 교수라는 이 아무개 여사가 더듬더듬 우리 한국말을 했다. 학생들은 우리말이 무척 서툴렀다. 책이 없다고들 했다. 교과서 등이 아주 부족했다고들 했다. 말은 서로 서툴렀지만 한두 시간 재미있게들 지냈다. 이곳 도시엔 마로니에 나무들이 가로수로 줄지어 있었다.
  이곳에서 다시 레닌그라드로 올라갔다. 레닌그라드에서 역시 2박3일을 했다. 이곳 레닌그라드는 소위 러시아 문학의 본거지다.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 푸쉬킨 등의 동상들을 비롯해서 많은 문인들, 과학자들의 동상, 박물관, 유적지 등등이 잘 보전되어 있었다. 여러 곳을 그리고 다녔지만 그 대표적인 것 하나를 소개한다.

    옛 궁전 앞에서
    흐르는 네바 강줄기를 그린다

    힐끗 돌아다보니
    말 탄 녹슬은 기사의 동상이 보인다

    파도를 밟고, 적을 밟고 있는
    푸른 용사의 기상

    푸쉬킨 시에 나오는 푸른 용사
    그 사람의 동상이라 한다

    세상은 지금도 정복하는 자와
    정복당하는 자의 마당,

    나는 지금 나의 조국을 생각 한다
    그 혼란을.
         -  「옛 궁전 앞에서」

  이곳에서 우리 일행은 헝가리로 들어갔다. 부다페스트. 지금 우리나라는 헝가리하고 친숙한 나라가 되어있지만, 그때만 하더라도 서먹서먹한 국가관계로 있었다. 그러나 무사히 공항을 빠져 나갈 수가 있었다.
  이곳 부다페스트는 부다라는 시와 강(다뉴브)건너 페스트라는 시가 합쳐져서, 이렇게 부다페스트라고 불리운다고 한다.
  아침에 거리로 나가보니 아름다운 궁전들이 작은 파리를 연상시키는 도시였다. 참으로 아름다운 왕국의 수도 같은 인상이었다. 다리는 꼭 전쟁 영화에 나오는 구라파 도시의 다리 같은 인상이었다. 다음과 같은 시와 그림을 그렸다.

    헝가리, 이 다리를 한번
    같이 나란히 걷고 싶었던    여인이 있었다

    전쟁 영화의 한 장면처럼
    어차피 인간은 죽을 것을.
         -  「헝가리」

  이 여인은 지금은 말할 수 없는 여인, 죽은 뒤에나 짐작이 갈는지.
  소문, 체면, 억지, 유언비어 때문에 한국은 아직도 도덕 윤리의 폐쇄국이라 하겠다.
  이곳 헝가리에서 1박2일하고, 마지막으로 유고슬라비아로 갔다. 이곳 유고에선 사라예보에서까지 2박3일을 하고 암스텔담으로 갔었다. 사라예보에서 다음과 같은 시와 그림을 남겼다.

    신들은 간 곳이 없고
    돈들만 돌고 있다.

    세계 어디서나.
         -  「옛 장터, 사라예보에서」

  암스텔담에선 P. E. N. 대회가 열리고 있었다. 네덜란드의 마스타릿희를 거쳐 파리까지 그 아름다운 유럽 고속도로를 버스로 달리었다. 먼 회상처럼.

    
    
△ 이전글: 조병화의 순수고독 순수허무 제729호
▽ 다음글: 조병화의 순수고독 순수허무 제727호
Copyright 1999-2022 Zeroboard / skin by enFr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