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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주金光洲씨와 그 주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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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주·박인환·이진섭·유호·이해랑·유두연·윤용하·한노단·이봉구·김수영·김영주·이순재·이명온·
조경희·이인범·조애실·조영암·박연희·김양수·김성민·장만영·이경성·권영숙·방용구·최완복·
이석곤·이병일·한창우·오종식·박계주·최호진·서임수·김내성·정한숙·임인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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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조된 이력서와 서류로 얼마든지 출세할 수 있었던 그 생존의 현장, 먼지 같은 화폐일지라도 화폐, 돈만 있으면 안 되는 것이 없었던 그 생존의 현장, 아무리 머리가 없는 바보라도, 학벌이 없어도, 뚜렷한 재능·능력이 없어도, 경력이 없어도 조직에만 끼면 끝없이 출세할 수 있었던 그 생존의 현장, 그 한국 사회를 우리들은 1945년 해방 이후, 1950년대·1960년대를 살아왔던 거다. 더구나 한국전쟁을 전후해선 더 극심했던 그 치사한 생존을 견뎌야만 했다.
그러한 현실에서 명동을 떠돌던 예술인들은 시대의 양심, 그 고독한 존재의 증인을 살았던 거다.
돈은 없어도 너그러운 그 우정을, 출세는 없어도 그 고결한 인생을, 조직은 없어도 그 황량한 자유를, 서로 엉겨서 시대의 흐름, 그 역사를 응시하고 있었던 거다.
무수한 금속분처럼 쏟아지는
태양을 맞어가며
우정과 배치되는 노상에 서서
나는 낡은 지폐의 피부를 비벼야 했다.
1952년
아세아 그 어느 콘크리트 계단에 비켜서서
검은 장미를 안은 수만의 숙녀들을
나는 보내야 했다
전쟁과 전쟁의 계곡으로 황혼이 저물어
아해들의 울음이 먼 마을에 짙으면
오히려 그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장미의 축배를 기울이고
찬 겨울밤
연대와 연대가 바뀌는 틈 속으로
이렇게 낙타 깃을 여메고
나는 내려가야만 했다.
벗이여
출세와 이득이 가랑잎처럼 쏟아지는
서류의 그늘을 비켜 가며,
이와는 배치되는 인간구도의
긴 사양斜陽을 걸어가는 벗이여
오, 1952년
생명의 푸른 절벽을
너와 나는 이렇게 서야만 했다.
이 시집 첫 번에 나오는 시, 인간구도人間構圖이다. 전쟁고아, 전쟁미망인, 부조리한 사회, 어수선한 불안, 전쟁이 지나간 상처투성이의 조국, 얼마나 많았던 눈물이었던가.
이 작품은 부산에서 썼던 것이지만 서울 수복 후에도 그 역사의 아픔은 매한가지였다.
전쟁의 잿더미 같은 명동에 날이 갈수록 하나둘 제법 집다운 집들이 들어서고 그럴듯한 점포들이 늘어갔다.
명동 중심에서 가까운 자리에 ‘향원(鄕苑)’이라는 밥집이 생겼다. 고급 한국 정식집이라 할까, 깔끔하게 차린 음식점이었다. 이 집은 이진섭의 단골집이었다. 이진섭의 안내로 나도 출입을 하게 되었다. 동동주집이나 소주집 빈대떡집하곤 격이 달라서 호주머니 사정이 좀 좋지 않으면 선뜻 ‘향원’으로 가자 하기가 안되는 집이었다. 이 집에선 정종을 마셨다. 여러 번 출입하는 동안에 정이 들었다. 특히 주인 권영숙(權英淑) 여사가 조용하고 품위가 있어서 더욱 마음에 끌렸다.
이 집엔 대학교수들이, 그리고 모모한 사장들이 자주 출입을 했다. 특히 이화대학 전성기였던 시대의 방용구(龐溶九) 교무처장, 최완복(崔完福) 교수, 이석곤(李碩崑) 교수, 이병일(李炳日) 교수, 그 그룹들이 거의 매일 밤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리고 경향신문의 한창우(韓昌愚) 사장, 오종식(吳宗植) 주필(당시 편집국장) 등 회사 사장들, 소설가 박계주(朴啓周), 최호진(崔虎鎭) 교수, 서임수(徐壬壽, 현재 수필가) 씨, 이러한 장안의 명사들이 얼굴들을 보이곤 했다. 말하자면 이러한 장안의 문화인들의 정다운 술집이었다.
나는 나의 주변 사람들, 호적이 없는 우리 가족들을 대동하고 자주 이곳에서 술을 마셨다. 김광주씨·이해랑·한노단·이진섭·박인환·이봉구 제씨들과, 그러다가 ｢향원鄕苑｣이라는 시를 하나 썼다. 그걸 김광주씨가 경향신문 문화면에 실었다. 실린 건 나로선 좋았으나 신문사 내에서 큰 난리가 났다. 한창우 사장과 오종식 국장이 “경향신문이 향원 밥집 광고 선전지인가?” 하고 책상을 차고 고함을 울렸다는 거다. 얼마나 책상을 내리쳤던지 문화부장의 책상에 구멍이 났다는 거다. 이 말을 그날 저녁 단골 술집에서 술을 마시다가 듣고 나는 미안하기 짝이 없었다. 광고도 아니고, 선전도 아니고, 고의적인 목적도 있었던 것이 아니었는데 이러한 소동이 나서 내가 존경하는 김광주 문화부장에게 화가 미쳤으니, 할 말이 없었다. 나는 흔히 불란서 파리의 시인들이 단골집이나, 단골거리나, 단골골목이나, 명소 같은 곳을 아름다운 시로 읊은 것을 읽었기 때문에 나도 내가 살고 있는 서울을 그렇게 읊어서 기록해두고자 하는 생각에서 그랬던 거다.
“조형, 내일 신문사에 오거든 내 책상의 구멍을 보시오. 오 국장이 얼마나 주먹이 센지......” 하고 껄껄 웃은 김광주씨의 얼굴을 보고 좀 마음이 놓이긴 했지만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자, 한 잔씩 들고 이 사건을 길이 축하합시다.” 박인환의 말이었던가, 그날 밤에 술에 범벅이 되어 까마득히 세상을 잊었었다. 그 사건의 시는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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