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사랑의 시인 조병화문학관입니다
 
 

제목: 조병화의 순수고독 순수허무 제656호 여든네번째 서신


글쓴이: 관리자

등록일: 2019-06-18 08:14
조회수: 35
 
  긴 장마철이옵니다. 이 심한 장마철에 수해는 없는지요. 사방에서 물난리라는 소식이 신문에서나 텔레비전 방송에서나 무섭게 보도되고 있습니다. 이 불경기 속에서 농사만이라도 착실하게 풍년이 들어야 하겠는데요.
  어제 음력 유월 이일, 양력으로는 칠월 육일이 어머님의 기제사였습니다. 어머님이 돌아가신 것이 벌써 삼십오 년이 됩니다. 어머님이 돌아가신 다음해에 지은 편운재가 올해로 삼십사 년이 되니까 말입니다. 편운재는 육십삼 년 한식날 기공을 한 것입니다.
  나는 어머님 제삿날을 기점으로 해가 바뀌는 것으로 나의 일 년을 삼고 있습니다. 어머님 기제사를 치러야 한 해가 이제 갔구나, 다시 한 해가 시작을 하는구나, 하는 생각으로 세월을 보내고 있습니다. 오래간만에 편운재 주변을 살펴보니 이번 비바람에 그렇게 많이 달려 있었던 살구들이 노랗게 익은 모습으로 다 떨어져 버렸습니다. 초록빛 풀은 무성하고.
  담쟁이넝쿨이 길을 온통 덮어 버리고 있습니다. 그 성장률에는 그저 감탄할 뿐이었습니다. 무서울 정도로 무성한 생존력.
  인간에게도 저러한 생명력이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능소화도 담으로 지붕으로 뻗어 올라가서 너울너울 그 오랜지 빛 꽃을 피워 올리고 있었습니다.
  참으로 자연의 생명력은 왕성합니다. 무성합니다. 기운찹니다.
  무서울 정도로 비가 내리고 있는 개울에 나가 보았습니다. 어린 시절, 발을 치고 그물을 치고 고기를 몰던 생각이 나서,
  개울은 그 동안 내린 장마비에 물이 많이 불어나서 힘차게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개울의 물줄기는 달라졌지만 역시 빗속에서 아이들이 고기를 잡고 있었습니다.
  옛날이 그리워졌습니다. 지금 나는 변하고 변하고 변하고 또 변해서, 나의 옛날은 하나도 남아있지 않지만, 그래도 기억이 납니다.
  저녁에는 날이 개서 기분 좋게 제사를 모셨습니다. 이것도 어머님의 고마움이지요.
  그럼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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