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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주金光洲씨와 그 주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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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주·박인환·이진섭·유호·이해랑·유두연·윤용하·한노단·이봉구·김수영·김영주·이순재·이명온·
조경희·이인범·조애실·조영암·박연희·김양수·김성민·장만영·이경성·권영숙·방용구·최완복·
이석곤·이병일·한창우·오종식·박계주·최호진·서임수·김내성·정한숙·임인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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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글을 쓸 때 늘 고민하는 건 호칭 문제다. 적당한 말이 없다. 나에게 있어선 김광주라는 사람은 김광주 선생이지, 김광주씨도 안되는 말이고, 그냥 김광주라고는 더욱 할 수 없는 문단의 은인이다. 그러나 문장의 보조를 맞추기 위해서 존경하는 마음을 표하면서 ｢김광주씨와 그 주변｣, 이렇게 글을 써내리기로 한다. 참으로 나에겐 고마운 문단의 대선배요, 그 안내자요, 그 보호자요, 그 격려자요, 그 선생이요, 그 의지자였다.
문단뿐만 아니라 실로 인생에 있어서 큰 시범자였다. 그 대담한 인생관에 있어서, 그 중국 대륙적인 기풍에 있어서, 그 곧은 기질에 있어서, 그 견고한 정의감에 있어서, 그 굳은 의리감에 있어서, 그 거대한 서민적 체취에 있어서, 나는 김광주 선생의 가장 가까운 주변에 있으면서 실로 큰 인간, 그걸 많이 배웠던 거다.
이 글에서도 그렇지만 감히 김광주씨라고 똑떨어지게 부를 수 없는 걸 시인 박인환은 서슴지 않고 김광주씨, 이렇게 부르는 걸 자주 들었다. 김광주씨는 1910년생. 나는 1921년생, 박인환은 1926년생, 그러니까 김광주씨와는 16년이나 아래인데도 서슴지 않고 김광주씨, 이렇게 마구 불렀었다. 주변에 있는 우리들은 그게 되는 말인가, 이렇게 말을 해도, 김광주씨 본인은 허허 웃어넘기곤 했다.
이런 일도 있었다. 어느 날 어느 술자리에서 있었던 일, 그날 밤에도 단골인 이진섭·유호·이해랑·유두연(영화감독)·나·박인환, 이렇게 싸구려 동동주를 마시고 있었는데, 좀 언짢은 말이 박인환 입에서 나왔다. 그리고, “여보, 김광주씨 당신이 무어야!” 하곤 술상을 들어 엎을 시늉을 했다. 그러자 김광주씨가 “그래, 네가 상을 엎을 수 있어!” 말하자 “네가 뭔데 못 엎어.” 하곤 그 많은 안주와 그릇이 놓여 있는 술상을 그대로 엎어버렸다. 그 순간 찌개국물이고 김치국물이고 반찬들이 김광주씨에게 범벅이 되어 엎질러졌다. 술이 뚝뚝 김광주씨의 얼굴에서 흘러내렸다. 순간 좌석이 엄청난 침묵으로 빠져들었다. 빠져들면서 김광주씨 말이 나왔다. “여보 주모, 이 상 다시 차리시오.” 하곤 옷을 툭툭 털며 다른 말 한마디 없이 “다시들 시작합시다.” 하며 좌석을 고정시켰다. 이렇게 김광주씨는 대담한 분이었고, 박인환도 성질이 당돌하면서 칼날 같았다. 물론 술들이 만취되어 술자리를 일어설 땐 다 그러한 사건들은 잊고 “내일 다시.” 이렇게 헤어졌다.
박인환은 나를 만날 때마다 “넌 왜 김광주씨를 만나면 그렇게 즐거우냐?” 시기 비슷이 말을 하곤 했다. 그건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진담이고 농담이고, 무슨 말이고 서슴없이 말할 수 있는 하늘 같은 마음을 김광주씨는 나에게 주는 분이었기 때문이다. 아마 나 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주변에 모여드는 모든 분에게 그렇게 너그럽게 대해주는 분이었다. 더구나 경향신문 문화부 부장으로 있었으니까 항상 주변엔 많은 문화인들이 득실거렸다.
｢보리밭｣으로 지금은 불멸의 작곡가가 된 윤용하(尹龍河)씨를 비롯해서, 이해랑씨를 중심해서 신협(新協) 단원들, 그리고 한노단·이진섭·이봉구·박인환·김수영·유호·김영주(화가, 삽화가)·이순재(화가, 삽화가)·이명온·조경희·이인범·조애실·조영암·박연희, 실로 거의 매일밤을 한 가족처럼 만나 차를 마시고, 술을 마시고, 술과 고독과 우정에 취해서 서울 수복 후의 부스러진 명동을 살았던 거다. 이해랑씨의 말대로 그것은 하나의 ‘호적이 없는 가족들’이었다. 호적이 없는 가족들, 가족 이상으로 가족처럼 인생을 같이 살던 실로 가난한 시절의 즐겁고 풍요로운 가족들이었다.
그 호주가 김광주씨였다. 돈들이 없어도 김광주씨를 만나면 술을 마시게 되었다. 한번도 돈없는 내색을 하는 법이 없었다. 그냥 술집으로 들어가는 거다. 그리고 방 안에서 술좌석을 차리고 앉는 거다. 그리고 술을 마시는 거다. 그리고 만취가 되는 거다. 그리고 외상을 긋는 거 다. 그리고 그 이튿날이 되는 거다. ‘반 되만 더’라는 말이 유행했다. 이 말은 돈이 떨어져도, 통행금지 시간이 거지반 다 되어도, 술자리에서 일어서질 않고 ‘우리 반 되만 더 마시자’ 하여 주모보고 하는 말이 “반 되만 더, 반 되만 더......” 김광주씨가 버릇처럼 하던 말이 명동 일대에 퍼진 거다. 끝까지 반 되만 더 마시자는 아쉬운 밤을 매일매일 술과 정과 고독과 방황으로 보냈던 거다. 그 쓸쓸하던 폐허의 시절을 명동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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