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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운金素雲씨와 그 주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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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주·정충량·박기원·이진섭·유호·안의섭·신태민·김기림·이봉구·김광균·장만영·박인환·김병욱·
양병식·송지영·신상초·이태직·헤르만 실밤·이헌구·이하윤·변영로·오종식·김동리·손소희·조연현·
오영수·한노단·조영암·임긍재·김환기·이해랑·이인범·윤용하·이한직·유두연·박연희·이명온·김말봉·
김소운·오상순·안수길·김윤성·오영진·윤효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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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운은 이렇게 기분 좋게 술이 올라가면 ‘가라다치노 하나(탱자나무꽃)’를 목청 높여 노래부르며 눈물을 글썽기렸다. ‘가라다치노 하나’는 일본 시인 기다하라 하구슈(北原白秋)의 시에 야마다 고우사쿠(山田耕作)가 곡을 붙인 일본의 명곡이다. 소운의 눈물은 기다하라 하구슈의 은혜로운 그 추억에서 나오는 눈물이었다. 소년 때 일본으로 밀항, 신문배달·우유배달, 야간학교, 고학, 이런 시절에 기다하라 하구슈를 만났다는 거, 시의 지도를 받았다는 거, 크게 인정을 받았다는 거, 조선동요선 조선민요선을 이와나미 서점에 소개해서 출판이 되었다는 거(20세 초반), 그 출판기념을 기다하라 하구슈가 자신의 경비로 유명한 요정에서 해주었다는 거, 그 자리에 당대의 일본 문단의 거물급 한 20여 명이 초대되어 참석을 해주었다는 거, 그것으로 인해서 소운은 일시에 일본 문단에 혜성처럼 나타나게 되었다는 거, 그 이후도 줄곧 기다하라 하구슈의 보호를 받았다는 거, 그 은혜 눈물로 다 갚을 수가 없다는 거다.
나도 지금 우리 한국 문단의 선배급에 들어가고 있지만 나의 후배, 나의 제자들에게 한번 크게 이렇게 출판기념회를 마련해준 적은 없다. 이걸 부끄러운 일이라고 할까, 인색한 일이라고 할까, 아직 그러할 만한 후배·제자를 갖지 못했다고나 할까.
이튿날 나는 소운에게 파이프를 하나 선사할 마음이 들었다. 국제시장을 이러저리 알만한 곳은 다 돌아다녔으나 소운이 좋아할 만한 파이프를 발견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애꾸눈 가게에 가서 파이프를 내가 찾을 수도 없고, 다시 국제시장으로 들어가려 할 때 한 중년 사나이가 그럴듯한 파이프를 물고 있었다. 혹시나 해서 “물고 있는 파이프 팔지 않겠소?" 하고 물었더니 뜻밖에도 “그렇습니다. 얼마 주겠소?" “달라는 대로.” 나는 달라는 대로 그 값을 치르고 그걸 샀다. 그리고 금강다방에 가서 파이프를 깨끗이 손질을 했다. 그리고 건너편 토스트 집으로 건너갔다. 소운은 무엇을 부지런히 쓰고 있었다. 쓰는 원고지 위에 파이프를 쓱 밀어놓았다. “이거 웬 파이프야?” “저의 선사입니다.” 했더니, 한참 고개를 들고 파이프를 비비더니 “무슈, 술 마시러 가지, 금강에 광주형 있지?” 소운은 나를 언제나 무슈라고 했다. 동구라파에서 온 청년 같다고 했다. 소운은 손님이 그리 없는 불쌍한 술집을 찾아다니며 팔아주는 것이 버릇처럼 되어 있었다.
1952년 8월 18일, 나는 피난 내려온 정음사에서 최영해(崔暎海) 사장의 호의로 제3시집 패각貝殼의 침실寢室을 출판했다. 그리고 광복동 네거리 ‘녹원’다방에서 출판기념회를 했다. 비가 내리는 늦은 여름밤이었다. 피난지에서의 모임이라 그랬는지 참으로 많은 시인·소설가·예술가·학교 동료들이 가득히 참석을 해주었다.
김소운·오상순·안수길·이하윤·이헌구·한노단·손소희·김말봉·이한직·윤용하·이진섭·이인범·이해랑·김윤성·이명온·김환기, 여기까지 기억이 나며 조영암 시인의 고함소리가 머리를 친다. “일체의 수속이 싫어 / 그럴 때마다 가슴을 뚫고 드는/ 우울을 견디지 못해 / 주점에 기어들어 나를 마신다(여기까지가 나의 시)......, 이 거지 발싸개 같은 조국에서.” 이 말을 가로막고 일어선 것이 김말봉 여사. “여보, 그 말 취소하시오. 뭐가 거지 발싸개요.” 조용히 진행되던 출판회 회장은 별안간 난리가 났다. 여기서 고함소리, 저기서 고함소리, 수라장이 된 장내는 램프불 밑에서 더욱이 말이 아니었다. 밖에 홍수처럼 비가 쏟아지고, 어떻게 수습이 되었는지, 지금도 아물아물하지만, 이차회에 김소운 그룹으로 압축되었다. 김광주씨를 중심해서 이인범 이해랑·한노단·이진섭·이명온·윤용하·임긍재. 김광주씨는 출판기념회 같은 것은 아주 질색을 했다.
그 무렵 이탈리아 베니스에서 국제예술인대회가 있어서 김소운 오영진(吳泳鎭)·윤효중(尹孝重)·김말봉, 이 네 분이 출국을 했다. 그 길로 소운은 일본에서의 신문 인터뷰 기사 때문에 고국으로 돌아오는 길이 십몇 년간 막혀버렸다.
“1952년 11월 13일, 과(過) 수에즈 운하, 소운素雲”이라는 그림엽서 하나로 영 행방이 묘연해버렸다. 때때로 소운이 그립다는 일본 여인 집에 술을 팔아주려고 들르면 “지금 우리 선생님은 어디 계시지요?” 그 가련한 목소리. 짝사랑은 언제나 슬픈 거, 쓸쓸한 거, 고독한 거, 가련한 거, 소운은 일부에선 언짢은 말도 하는 생애를 살았으나(여자 문제에 있어서, 돈의 문제에 있어서), 그러나 나에게 있어선 그렇게 강한 인상을 준 사람도 없다. 시의 멋에 있어서, 시인을 사는 운명에 있어서, 시를 사는 고독에 있어서, 그 인간을 사는 깊이에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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