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사랑의 시인 조병화문학관입니다
 
 

제목: 순수고독 순수허무 제981호 (『시의 오솔길을 가며』)


글쓴이: 관리자

등록일: 2023-05-16 11:52
조회수: 74
 

영하 16°C부근


영하 십육도 얼마라는 매서운 아침
냉수로 세수를 하면서, 문득
어머님의 생각
어머님은 찬 겨울을 줄곧
이 냉수로 세술하셨던 것이 아닌가

어머님이 혼자 되셔서
우리들이 서울 살림을 처음 시작했을 때
우리들은 참으로
매서운 이 겨울처럼
가난했었다

그걸 견디어 냈던 것은
오로지 어머님의 하얀 모습, 아침마다
냉수로 세술 하시던 맑은 모습
냉랭한 그 모습이 아니었던가

일제 36년, 조선인처럼
우리 가족도 그렇게 가난했었지만
어머님은 매서운 그 가난을, 이른 아침마다.
매서운 냉수로 세술 하시듯이
맑게, 맑게 우리를 끌어올리신 거다

실로 가난은 매서운 거
처량한 거

어머님, 그곳은 지금 따스하시옵니까,
지금 이곳은 영하 십육도 얼마라 합니다.


詩想노트

독일의 철학가이며 시론가인 마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1889~1976)는 “언어는 존재의 숙소”라고 말하고, 일본의 순 초현실주의 시인 기다소노 가스에(北園克衛, 1902~1978)는 “시인이 시를 가지고 사회적 현실에 항의한다는 것은 다다미 수련자가 다다미를 가지고 세계에 항의하는 것과 같다.”고 말하고, 내가 좋아하는 일본의 시인 무라노 시로(村野四郞, 1901~1975)는 “시는 시적감동의 질서화”라고 말하고 “시는 낡은 언어에 항상 새로운 생명을 소생시킨다.”라고 말하며 “시는 과학으로서 부여할 수 없는 전연 다른 지혜를 인간에게 부여한다.”라고 말을 했습니다. 또 그는 “시를 쓴다는 건 그 자체가 즐거운 일”이며 “확실히 시는 고급스런 즐거움이다."라고 말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또 “순수한 시는, 결코 어느 결론이나 목적을 위해서 쓰여지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 무상(無常)의 행위(行爲)에서 이루 말할 수 없는 큰 가치를 향락하는 것이다.”라고 말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또
“대상을 응시하는 것은 새로운 자기발견의 길이다. 시인에게 가장 중요한 상상력이라는 이미지의 연쇄반응의 작용도 이 대상에 대한 응시 기록의 축적에서 오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또
“나는 나의 시가 이 세상에서 나하나 밖에 없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시를 쓴다.“라고도 말하고 있습니다.

실로 나도 이러한 무라노 시로와 같은 시론과 그 시인의 태도로 지금까지 나의 시만을 고집하면서 시를 실로 많이도 써 왔습니다.
확실히 시는 나에게 있어서 즐거움입니다. 영혼의 위안이며, 그 희열이며, 그 쾌락입니다.
시가 고통스럽고, 어렵다는 사람을 보면 대단히 의아스럽게 생각되곤 했습니다.
폼으로 그러는 건지, 일부러 그러는 건지, 권위를 세워서 그러는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실로 좋은 시를 쓰려면 좋은 시적 이미지가 있어야 합니다. 좋은 시적 이미지는 매사를 잘 관찰하고 응시하고 생각하는 그 깊은 응시의 축적에서 오는 겁니다.
응시의 축적은 경험의 축적이며 지적감각이나, 예지의 축적입니다. 우리는 수시로 이러한 축적을 풍부하게 항상 새롭게 해가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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