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사랑의 시인 조병화문학관입니다
 
 

제목: 순수고독 순수허무 제978호 (『시의 오솔길을 가며』)


글쓴이: 관리자

등록일: 2023-05-05 14:19
조회수: 72
 

나는 지금까지
-나의 사원寺院


나는 지금까지
의지할 만한 신도 사람도
종교 같은 것도 없이
오로지 혼자 안에서 혼자를 지켜
혼자에서 의지하여
혼자를 살아온 것이 아닌가

그 혼자 안에서, 아름 아름
믿음과 예감, 마음의 의지 같은 것이 있었다면
먼 곳, 어느 곳에
나를 기다리고 계실 듯한 어머님의 자리
나도 그곳으로 가는 거다, 하는
투명한 신앙 같은 것이 아니었던가

어머님, 저 이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당신이 주신 목숨을
당신의 뜻인 듯한 생애를 찾아 더듬으며
당신의 약속대로 당신의 길을
당신에게 가까이
이렇게 혼자 살아 올라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곳까지 왔습니다
그리고 당신 말씀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멀리 성당을 바라다보며, 사찰을 보며
하늘로 뾰죽뾰죽 솟아오른 예배당을 보며
먼 그 거리距離
외톨로
혼자 가는 길

나는 지금까지
의지할 만한 신도 사람도 없이
오로지 혼자 안에서 혼자를 지켜
혼자에 의지하여
혼자를 살아온 게 아닌가

어머님이 기다리고 계실 듯한 그 확신
먼 자리, 그 약속의 자리
아름 아름
그 생각에 의지하여


詩想노트

영국의 시인 필립 라킨(Philip Larkin, 1922~1985)이라는 유명한 사람이 있습니다. 지금도 살아 있습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나 자신의 시에 대하여, 내가 시를 쓰는 것은 내 자신을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나 밖의 타인을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내가 본 것, 내가 생각한 것, 내가 느낀 것 그것들을 남기기 위해서입니다.”
라고 말하면서도 또
“나의 제1의 책임은 내 자신의 경험자체이며 그것을 잊어버리지 않으려는 겁니다. 그리고 그것들을 남기려고 하는 충동은 모든 예술의 근저(根底)이다. 따라서 내 자신의 시는 일반적으로 말해서 내 자신의 개인적인 생활에 관계가 있는 거다. 그러나 항상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내가 보지 못한 말(마馬)이라든지, 내가 여자가 되어보지 못한 거라든지, 신부(新婦)가 되어 보지 못한 거라든지, 할지라도 그 정도는 상상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라고 말했다. 또한
“근본원칙으로 나는 시라는 것은 자기만의 새롭게 창조한 우주여야 한다고 믿고 있다. 따라서 전통이라든지, 공통의 신화라든지, 시 속에서 다른 시인, 다른 시와 접촉해 본다든지 하는 것은 질색이다. 시인의 유일한 지침은 자기의 판단력이다.”
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먼저에서도 말한 것처럼 라킨이라는 시인은 워낙 세계적인 거물급 시인이라 우리는 많이 생각을 하면서 읽어 둘 필요가 있습니다.
나는 지금까지 서른일곱 권의 창작시집을 출판했습니다만 그 숫자가 문제가 아니라 지금까지 한 권의 시집을 쓰고 있는 겁니다.
그것도 주제가 나이고 소재가 나입니다. 37권의 시집이 모두 내가 중심이 되어 있는 주제이고 그 소재들이며 일생 단 한 권의 시집입니다.
나는 나를 쓰고 있는 겁니다. 나의 운명을 쓰고 있는 겁니다. 나의 철학을 쓰고 있는 겁니다. 나의 길을 쓰고 있는 겁니다. 나의 죽음을 쓰고 있는 겁니다. 이 시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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