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사랑의 시인 조병화문학관입니다
 
 

제목: 순수고독 순수허무 제884호 (『세월은 자란다』 이후의 이야기들)


글쓴이: 관리자

등록일: 2022-06-20 16:36
조회수: 25
 
145. 1995년 4월 7일, 뜻밖의 일이 생겼다. 기적이라고 할 만 하다. 43년 만에 엽서가 전달  되었다.
  밤중에 부산에서 전화가 걸려 왔다. <조선일보> 영남 특파원 김홍수 사회부 기자라 하며, 김중업 건축가를 아십니까, 하는 급한 목소리의 전화였다. 김중업 씨가 43년 전, 그러니까 1952년 프랑스 파리에서 보낸 나에게로 오는 엽서가 지금 <부산일보>에 와 있다는 거다. 그러면서 몇 마디 전화 인터뷰가 있었다. 나는 물어 보는 대로 대답을 했다.
  한국 6·25 동란 시 부산으로 피난을 가서 송도에 자리 잡고, 김중업 씨의 청을 들어서 송도 보리밭을 사서 삼면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집을 지었다는 것, 그것이 김중업 씨의 제일 첫 번째 작품이라는 것, 그 후 김중업 씨는 큰 뜻을 가지고 프랑스 파리로 유학을 갔다는 것, 그곳에 가서 이 엽서를 보냈다는 소식 등.
  그랬다. 김중업 씨하곤 6·25동란 전 서울 명동 거리에서 만나서 친했던 거다. 그는 아주 재치 있는 연배 친구로서 문학이나 음악에 조예가 깊었다. 말하자면 꿈이 서려 있는 낭만적인 청년이었다. 그는 그의 꿈대로 아주 낭만적인 설계로 한양대학교 건축과 교수인 그의 친구 박학재라는 사람과 같이 나의 집을 지었던 거다. 아주 모던한 산장처럼.
  나는 이 집에서 작품을 써서 1952년 7월에 제3시집 『패각의 침실(貝殼의 寢室)』을 출판했다. 최영해 사장이 그의 ‘정음사(正音社)’에서 출판을 해주어서. 나는 멋을 내느라고 ‘The House of Shell'이라는 문패까지 이 집에 달았었다.
  박종화, 모윤숙, 이헌구, 김광주, 이해랑, 한노단, 이인범, 김환기, 김중업 이런 분들을 초대해서 집들이를 했다. 참으로 까마득한 생각이 든다. 이분들은 이미 다 죽었으니, 43년 만에 전달되는 엽서, 이 신기한 사실로 남겨둔다.
(『나보다 더 외로운 사람에게』, 185-18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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