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사랑의 시인 조병화문학관입니다
 
 

제목: 순수고독 순수허무 제801호 (시로 쓰는 자서전 세월은 흐른다)


글쓴이: 관리자

등록일: 2021-08-25 13:27
조회수: 7
 
62 조각구름의 집
   편운재 이야기

시공을 지나는 길에 잠시 머물어 가는
하늘 아래 흰 굴뚝
조각 구름의 집
산까치 해마다 새끼 쳐서 주인 빈 사이에 산으로 뜬다.

지구 동북쪽 늙은 산천
한글의 나라, 경기도 안성
산간에 낀 저수지 마을, 난실리
나무 나무 가지 가지
수면으로 몰려든 바람, 편운재 그늘에서 쉰다.

주인은 먼 마음, 뜬 생각에 머물고
타향에 버린 세월 털어 걸고
뻐꾹꾹
가려진 유리창, 남은 일월, 램프로 산다.

마신 시간을 토하며 토하며
시공을 지나는 길에 잠시 마련한
하늘 아래 흰 굴뚝
조각 구름의 집
산까치 해마다 새끼 쳐서, 주인 빈 사이에 산으로 뜬다.

                               시집 『오산(烏山) 인터체인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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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2년, 양력 6월 2일, 아침에 어머님은 81세로 이 세상을 하직하셨습니다. 하두 마음이 공허해서 다음 해 1963년 한식날 성묘를 하고, 아버님 묘소와 어머님 묘소 한중간 솔밭에 소나무들을 베어 내서 그곳에 묘막을 하나 지었습니다. 때마침 푸르고 넓은 하늘에 작은 한 조각 흰 구름이 떠 지나가기에 편운재(片雲齋), ‘조각구름의 집’이라고 집 이름을 지었습니다.
  사실 나는 내가 살아 있는 동안, 이 지상엔 눈에 보이는 집을 짓지 않으려고 했던 겁니다.
  그저 내게 주어진 시간, 시간 속에 살다가 시간 속에 눈에 보이지 않는 내가 살다 간 흔적으로서의 집을 지으려고 노력을 했던 겁니다. 말하자면 나의 존재의 집이지요. 다시 말하면 역사를 하나 묻어 놓고 떠나려는 집, 그 눈에 보이지 않는 확고한 시간의 내 집 말입니다.
  눈에 보이는 지상의 물질적인 집은 때가 되면 변할 수도 있고, 소실될 수도 있는 덧없는 건물이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적, 혹은 존재적인 집은, 때가 되어도 변하지 않고, 소실되지도 않는 영구적인 ‘나’라는 존재의 영혼의 집입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내가 지상에서 살고 있는 집은 집이 아니라, 나의 작품이 시간을 살고 있는 시간 속의 내 집이라는 말입니다. 그것이 영원한 내 존재의 집이라는 말입니다.
  역사 속에 집을 짓는다, 시간 속에 집을 짓는다, 라는 생각이 짙었기 때문에 지상의 집은 그저 머물다 떠나는 임시가옥 정도로 늘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겁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이러한 사상을 가지고 살고 있었기 때문에 이 세상엔 내가 소유하고 싶은 것은 하나도 없는 겁니다.
  변하고 변하고 변하는 세상에서 실로 변하지 않는 것은 내가 만들고 있는 작품뿐이옵니다.
  이 작품들이 얼마큼 후세에 남아서 나의 ‘존재의 집’, ‘시간의 집’, ‘역사의 집’을 만들어 줄지는 모르나 나에겐 이러한 집이 집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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