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사랑의 시인 조병화문학관입니다
 
 

제목: 순수고독 순수허무 제795호 (시로 쓰는 자서전 세월은 흐른다)


글쓴이: 관리자

등록일: 2021-08-03 14:36
조회수: 24
 
56 그 자리에 서 계시옵니다
   길모퉁이에 서 있는 어느 순경에게

당신의 눈은 온 나라를 밝게
하여 주시옵니다
당신의 귀는 온 나라를 편안케
하여 주시옵니다
그리고 당신의 신경은 온 나라를 한 집안으로
하여 주시옵니다
그리고 당신의 그 봉사는 온 나라를 굳게 태안케
하여 주시옵니다

비바람 쏟아지는 밤에도 그 자리
서 계시옵니다
눈보라치는 밤에도 그 자리
서 계시옵니다
캄캄한 추운 밤에도 그 자리
서 계시옵니다
조국의 밤 지키며
겨레의 잠 지키며
형제 자매들의 그 웃음, 그 사랑, 그 내일 지키며
---그 자리 서 계시옵니다

비바람 쏟아지는 밤에도
눈보라치는 밤에도
캄캄한 추운 밤에도
가난 참아 가며
어려움 참아 가며
위험 속 그 속에서

당신의 눈은 온 나라를 밝게
하여 주시옵니다
당신의 귀는 온 나라를 편안케
하여 주시옵니다
그리고 당신의 신경은 온 나라를 한 집안으로
하여 주시옵니다
그리고 당신의 그 봉사는 온 나라를 굳게 태안케
하여 주시옵니다

비바람 쏟아지는 밤에도
눈보라치는 밤에도
캄캄한 추운 밤에도.

                     시집 『가숙(假宿)의 램프』에서
-----------------------------------------------------------------------------    
  이 작품은 1960년 대 후반 정치적으로 불안이 계속되던 시절에 어느 길모퉁이에서 경비를 하고 있던 쓸쓸한 순경을 보고, 박봉살이를 하면서 살아가는 이 나라 경관들의 모습을 그린 겁니다.
  나의 제 16시집 『가숙(假宿)의 램프』(1968.4.30. 민중서관)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이 해 민중서관에서는 서정주 시인의 『동천(冬天)』과 박목월 시인의 『경상도의 가랑잎』과 내 시집, 세 권을 출판했습니다.
  나는 시집 이름을 평소에 생각하고 있던 나의 철학 ‘가숙(假宿)’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나는 언제부터인가 이 이승의 세계를 우리 인간들의 가숙이라고 생각하기 시작을 했던 겁니다. 이 이승을 산다는 건 실로 잠시 간단한 가숙에 사는 데 불과한 것이라고 생각이 되었던 겁니다. 이 가숙에서 짧은 시간을 살다가 원숙(原宿)을 찾아가는 것이라고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겁니다. 나에게 배당된 그 시간을 이래저래 살다가 나의 본고향인 원숙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겁니다. 그 존재의 원숙으로. 이러한 생각으로 이 무렵 살았기 때문에 시집 이름을 ‘가숙(假宿)의 램프’라고 했던 겁니다. ‘램프’라는 말은 이곳에서 생명을 말하고 있는 겁니다. 눈을 뜨고 살아 있는 생명을 말하고 있는 겁니다.
  임시 숙소에 잠시 깃들다 시간이 되면 그냥 떠나야 하는 존재들, 어딘가에 있을 본향(本鄕)을 찾아서 그 존재의 숙소를 찾아서.
  나라를 위해서 가장 중요한 사람들로 나는 국민학교 선생님들과 경찰의 말단 직위인 순경을 늘 생각하고 있었던 겁니다. 이 사람들이야말로 나라의 기간(基幹)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 나라에선 가장 싼 월급쟁이요, 천대받는 자리이고 보니 어딘가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는 겁니다.
  가장 중요하고 소중한 사람들, 그들이 국민학교 교사들이요, 경찰의 순경들이옵니다. 잘되는 나라에서는.
    
△ 이전글: 순수고독 순수허무 제796호 (시로 쓰는 자서전 세월은 흐른다)
▽ 다음글: 순수고독 순수허무 제794호 (시로 쓰는 자서전 세월은 흐른다)
Copyright 1999-2021 Zeroboard / skin by enFr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