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사랑의 시인 조병화문학관입니다
 
 

제목: 순수고독 순수허무 제792호 (시로 쓰는 자서전 세월은 흐른다)


글쓴이: 관리자

등록일: 2021-07-23 16:05
조회수: 27
 
53 헤어지는 연습을 하며

헤어지는 연습을 하며 사세
떠나는 연습을 하며 사세

아름다운 얼굴, 아름다운 눈
아름다운 입술, 아름다운 목
아름다운 손목
서로 다하지 못하고 시간이 되려니
인생이 그러하거니와
세상에 와서 알아야 할 일은
‘떠나는 일’일세

실로 스스로의 쓸쓸한 투쟁이었으며
스스로의 쓸쓸한 노래였으나

작별을 하는 절차를 배우며 사세
작별을 하는 방법을 배우며 사세
작별을 하는 말을 배우며 사세

아름다운 자연, 아름다운 인생
아름다운 정, 아름다운 말

두고 가는 것을 배우며 사세
떠나는 연습을 하며 사세

인생은 인간들의 옛집
아! 우리 서로 마지막 할
말을 배우며 사세.

                           시집 『시간(時間)의 숙소(宿所)를 더듬어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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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시는 제 13시집 『시간(時間)의 숙소(宿所)를 더듬어서』(1964.10.31. 양지사)에서 뽑은 한 편의 작품입니다. 양지사는 그 때 새로 생긴 출판사, 지금 인하대학교 문과대학 임명방(林明芳) 교수가 시작한 출판사였습니다.
  평소 늘 나를 지배하고 있었던 철학, 그 인생관은 무상철학(無常哲學)이었기 때문에, 이별, 작별, 그 변화가 나의 생활의 근원적인 생각이었습니다.
  만나고 헤어지고, 헤어지고 만나고, 수없이 반복하는 이것이 인생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지금도 그러하지만, 이 비정의 무상철학이 내 가슴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기 때문에 나의 시는 어둡고, 고독하고, 쓸쓸하고, 독자에게 행복한 인생을 선사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자기 사상이나, 주장을 독자에게 강요하는 것은 작가의 죄라고 생각을 하고 있지만, 나의 철학은 어느 한편 독자에게 인생의 참뜻을 보내주는 좋은 점도 있을 것이라는 동료의식을 때때로 느낄 때도 있습니다.
  사실 인생이 무엇입니까, 변하고 변하여 쓸쓸하고, 외롭고, 그립고, 적적하고 불안하고, 공허한 장소, 그 고독한 순간적인 장소가 아니겠습니까.
  이곳에서 우리 인간들이 배워야 할 것은 이별의 철학입니다. 이것은 센티멘틀한 것이 아니라, 생(生)의 진실입니다. 생명을 가진 것들의 숙명적인 사실, 그것입니다.
  언젠가는 다가올 이별, 작별, 그것을 살아가면서 평소에 준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갑자기 그것들이 다가와도 허둥지둥, 당황하지 말고, 차분히 그것들을 받아들일 마음가짐을 갖아야 한다는 겁니다.
  이것을 비정한 수긍이라 할까요, 살아 있는 것들은 이 유한한 해후(邂逅)를 살아야 하는 겁니다.
  아무리 사랑하던 사람도 언젠가는 헤어져야 하고, 아무리 사랑하던 가족들 하고도 언젠가는 헤어져야 하고, 아무리 행복한 자리라 하더라도 언젠가는 헤어져야 하는 겁니다. 아, 변화무쌍한 무상의 세계, 우리들은 그 변화에 익숙해야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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