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사랑의 시인 조병화문학관입니다
 
 

제목: 조병화의 순수고독 순수허무 제716호


글쓴이: 관리자

등록일: 2020-08-25 15:50
조회수: 45
 
윗주머니 손수건

  지금 나에게 있어서 내가 아끼는 것이 무엇이 있나? 이런 생각을 해보아도 하나도 없는 것 같다.
  일전에 병원에서 퇴원을 하곤 의사의 말대로 술도 끊고, 담배도 끊고 했으니 그렇게 좋은 것만 찾아서 물던 파이프도 이젠 나하고 멀어져 가고, 그렇게 골라서 마시던 위스키나 꼬냑도 이젠 나하곤 상관없이 되었으니, 이전까지 그렇게 아끼던 것이 다 없어지고 말았다.
  최근까지도 참으로 내가 아꼈던 것이 파이프였다. 실로 좋은 것만 물었었다. 좀 값이 비쌌었도 해외여행에서 물고 들어 왔던 건 빛이 좋고 결이 좋은 맵씨 있는 파이프였었다.
  해외여행을 할 때마다 나의 눈이 머무는 곳은 늘 파이프들이 좋게 진열되어 있는 가게였었다. 그렇게 해서 모은 파이프들도 지금은 다 친구들에게 나누어 주고 있는 형편이다.
  술도 그렇다. 내가 술을 좋아한다는 것을 어떻게 알고선 선물 들어오는 것들이 모두 양주였었다, 제일 손쉬운 것이 위스키, 꼬냑, 더러는 버번, 포도주, 중국의 배갈 등 실로 좋은 술이 많이 쌓이곤 했지만 그것도 지금은 술을 좋아하는 친구들에게 나누어 주곤 한다.
  그러고 보니 내가 아끼는 것은 하나 밖엔 없게 되었다. 오랫동안 지니고 있던 것 중에선.
  양복 윗저고리 윗주머니에 모양으로 넣고 다니는 작은 손수건이라고 할까. 그 것 밖엔 없는 것 같다.
  그것도 1959년 여름, 처음으로 구라파 여행을 갔었을 때 파리 백화점에서 산 무늬 좋은 실크 목도리로 만든 헐은 것이다. 나는 그때 P.E.N. 서독대회에 참석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그때 사서 목에 맨 실크 목도리가 근 30여 년 목에 들려 다니니까 이젠 헐어서 금이 나고 너털너털 해졌다. 그것을 문득 생각나는 대로 두 동강을 내서 내가 직접 양복 윗 호주머니에 꽂는 손수건을 만들었다.
  그렇게 해서 만든 것을 윗주머니에 무심코 꽂고 다니니까, 친구들이 잘 어울린다고 했다. 나도 워낙 그 천과 무늬, 색깔이 좋고 버리기엔 아까운 것이어서 그렇게 손수건을 만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윗 호주머니에 아무렇게나 꽂고 다녀도 그리 흉한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거진 나의 심볼로 생각하면서까지 이 색 바랜 손수건을 아무렇게나 자연스럽게 윗 호주머니에 꽂고 다니곤 한다.
  양복을 새로 맞출 때도 이 손수건을 미리 생각해서 그것에 어울리는 천, 색을 고르곤 했다.
  그렇게 해온 것이 무려 30년 가까이는 된다. 그러니까 목도리로 새로 산 것을 따진다면 30년 가까이를 이 실크와 그 무늬, 색, 모양새와 더불어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비록 지금은 좀 색깔이 낡고, 천도 기운 없이 됐지만.
  그러나 이것이 가장 나하고 오래 같이 세월을 지내온 물건이다. 그러니까 물질적으로는 가장 내가 아끼는 것이 이것이 된다. 정신적으로는 ‘꿈’이다. 꿈처럼 내가 좋아 하는 것은 없다. 꿈이라는 말, 언어, 그 단어처럼 나에게 기쁨을 주는 것은 없다. 그래서 나의 고향 경기도 난실리에도 이 ‘꿈’이라는 글자를 깃발에 써서 시골 버스 정거장에 달아 놓고 고향을 가꾸어 가고 있다. 마을 학생들에게도 한 장 한 장 나누어 주고.
  그러나 이 원고는 물질적인 것을 써달라고 하니까, 나하고 가장 중요한 나이에 나하고 같이 지낸 내 윗 호주머니의 손수건을 말한 것이다.
  인생에 있어서 가장 소중한 것은 시간이며, 그 세월이다. 그 시간과 세월을 가장 오래 같이 보낸 소지품이 손수건이다. 그러니 나에게 있어서 둘도 없는 소중한 물건(벗)은 이 손수건이 된다.
    
△ 이전글: 조병화의 순수고독 순수허무 제717호
▽ 다음글: 조병화의 순수고독 순수허무 제715호
Copyright 1999-2020 Zeroboard / skin by enFree

Warning: Unknown(): write failed: Disk quota exceeded (122) in Unknown on line 0

Warning: Unknown(): Failed to write session data (files). Please verify that the current setting of session.save_path is correct (data/__zbSessionTMP) in Unknown on line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