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사랑의 시인 조병화문학관입니다
 
 

제목: 조병화의 순수고독 순수허무 제715호


글쓴이: 관리자

등록일: 2020-08-07 08:15
조회수: 56
 
베 레

   지금까지 평생 살아오면서 내가 좋아하는 거라곤 파이프와 베레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술과 파이프를 즐겨 했는데 병원에 입원한 후로는 의사의 권유로 술과 담배는 확 끊었다. 끊지 않으면 병이 재발한다는 거다. 나도 모르는 본태성 고혈압이라는 병이다. 매우 성가신 병이다.
  그러니까 자연 파이프는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해외 나들이 하면서 그때 그때 사물던 파이프가 아직도 수십 개 있지만 그것도 이젠 골동품이 되어간다. 친구들에게도 많이 나누어 주었지만.
  베레는 지금도 계속 쓰고 다닌다. 베레도 해외에 나갈 때마다 사 쓰곤 했다. 그것이 지금은 여러 개 된다. 이 베레도 친구들에게 많이 선사하기도 했다.
  나는 곤색, 아니면 깜장색 베레를 좋아한다. 이것이 베레의 본색이라고 나는 생각을 하고 있다. 여름이나 겨울이나 사철을 가리지 않고 늘 곤색, 아니면 깜장색 베레를 쓰고 다닌다.
  나에게 있어선, 그러니까 베레의 역사는 오래다. 중학교 시절 소위 무전여행이라는 것을 했을 때, 우연히 관악산 산줄기에서 이 베레를 줏었다. 그땐 멋도 모르고 가벼우니까, 편리하니까, 쓰고 다녔다. 그때 그 베레도 곤색이었다. 아주 오래 되어 보였다.
  교모대신 그것을 쓰고 다니다가 나도 잃어버렸다. 그 후 어느 때였던가 베레가 하나 손에 들어왔다. 그것도 곤색이었다. 그땐 술집이나, 다방에 들락거리고 있을 때였다.  그땐 멋으로 썼었다. 애송이 시인이 건방지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해방된 그 분위기에서 베레와 파이프를 물고 제법 문인 냄새를 피우면서 술집, 다방, 명동 출입을 했다.
  지금 생각을 해보면 완전히 그것은 촌놈이었고 창피한 광경이었다. 그러나 그땐 그것을 모르고 자기 딴엔 제법 글 깨나 쓰는 체하고 다녔다.
  나중에 안 것이지만 프랑스나, 외국에선 노인들이 잘 쓰고 다니는 작업모자라 했다. 젊은 사람들은 여간해서 쓰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다.
  그러나 그 말을 들은 뒤에도 나는 무언가 허전해서 습관적으로 베레를 쓰고 다니곤 했다.
  참으로 서양 사람들이 쓰고 다니는 베레모 스타일은 멋있게 보였다. 골격이 그래서 그런지 참으로 멋있게 눈에 들어왔다. 그것에 비해서 동양 사람들에겐 그리 어울리지가 않게 보이곤 했다. 아무리 멋있게 쓸려해도 근본적으로 잘 어울리지 않았다. 골격의 차이라고 생각을 했다. 어딘가 부자연스러운 스타일, 그것을 늘 느끼곤 했다.
  동양에선 일본인들이 많이 쓰고 다닌다. 특히 교수들이. 원은 화가들이 많이 애용하는 모자이지만, 교수들이 많이 애용들 하는 것을 보았다.
  최근엔 우리나라에서도 제법 애용•유행되고 있다. 그러나 일본인이나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그리 어울리지 않는다. 좀체로 어울리기 힘들다.
  우리나라에서 지금까지 내가 보아 온 사람 중에선 이미 작고한 이마동 화백과 김환기 화백, 그리고 생존하고 있는 박고석 화백이 잘 어울리게 베레를 쓰고 다녔다.
  어딘가 모르게 멋이 있는 사람, 그렇게 되기가 실로 어려운 것이다. 베레라고 다 그 사람에게 어울리는 게 아닌 것 같다.
  베레를 잘못 쓰면 참으로 우수꽝스럽게 보인다. 만화 같기도 하고, 우습게 보일 때가 많다.
  참으로 어울리게 베레는 써야 한다. 지금까지 나도 내 모양을 생각하면서 쓰고 왔지만 아직까지도 몸에 배인 만족스러운 느낌을 한번도 가져 본 일이 없다. 몸에 배고 아무렇게나 써도 그것이 몸에 잘 배고 어울려야 하는 데 하는 생각을 하면서 베레를 쓸 때마다 신경을 쓰곤 한다. 오히려 아무렇게나 쓸 때 잘 어울려야 할 텐데 하는 생각을 하면서.
  아무튼 쓰기 힘든 모자가 베레다, 쓰기 편리한 모자가 베레이다.
  어느 책을 읽어보았더니 베레는 피레네 산맥, 그러니까 스페인과 프랑스와의 접경지대에 가로놓여 있는 산맥을 중심으로 살고 있는 바스크족들의 생활모자이며, 그 작업모자라고 한다. 생활에 편리한 모자다. 깔고 앉아서 방석이 되는 수도 있고, 과일이나, 마른 음식물을 담아서 나르기도 하고, 물을 담아서 마실 때도 있고 사용하지 않을 땐 접어서 호주머니에 넣어 다니기도 하고 하여간 이렇게 편리하게 시용, 이용할 수 있다는 거다.
  생각을 해보면 그렇다. 실로 방석도 되고, 무엇을 담을 수 있는 용기도 되고, 물을 나르는 용기도 되고, 접어 후주머니에 넣어 다닐 수도 있다.
  이러한 편리 때문에 작업모자로 잘 이용되었을 것이다.
  나는 한 번도 물이나 음식물은 담아본 일이 없었지만, 방석으로는 자주 이용하곤 했다. 참으로 편리하곤 했다.
  베레는 실내에서도 쓴다고 하지만, 그것만은 지금도 나는 못한다. 그걸 쓸 만한 용기가 없다. 그럴 땐 벗어서 호주머니에 넣곤 한다. 어느 칵텔 같은 잔치가 있을 땐 의례, 그렇게 접어서 호주머니에 넣곤 한다. 간혹 베레를 그냥 쓴 채로 있는 사람들도 보지만, 좀 건방지게 보이곤 한다.
  지금은 나이가 들어서, 그리고 좀 대머리가 벗어져서 베레를 써도 누구에게 신경을 쓸 필요가 없어졌지만, 아무래도 우리나라 사정에선 지금까지도 베레는 좀 특수한 느낌을 준다.
  그러한 신경을 쓰면서도 오늘날까지 실로 50년, 60년을 줄곧 나는 이 곤색 베레와 깜장색 베레를 써 왔다.
  이제와선 누가 무어라고 하더라도 개의치 않는다. 그저 그것이 내 모자니까 하고 쓰고 다닌다. 어울리던 말 던. 그러나 나에게 잘 어울리게 쓰느라고 신경을 아직도 많이 쓴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쓰고 다니는 스타일을 많이 보면서 연구도 한다.
  이렇게 몸단장을 하면서, 그렇다고 모양을 낸다는 뜻은 아니지만, 하여간 나에게 어울리게 베레를 쓰는 연습을 많이 하면서 오늘까지 왔다.
  그렇지만 아직도 서툴 때가 많다. 그러나 이젠 되도록이면 자연스럽게 쓰려고 노력을 하면서, 그렇게 쓰고 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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