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사랑의 시인 조병화문학관입니다
 
 

제목: 조병화의 순수고독 순수허무 제713호


글쓴이: 관리자

등록일: 2020-08-07 08:13
조회수: 52
 
회중시계


회중시계 하나 갖고 싶었다. 나이가 들수록 더욱 그 소망은 간절해 갔다. 그러나 마음에 드는 것이 눈에 띄지 않아 지금까지 그걸 못 갖고 있다.
  회중시계하면 우선 철도 역장시계가 생각난다. 어렸을 때 정거장에서 보던 그 역장시계, 그것이 가끔 생각나곤 한다. 그것이 그렇게 멋있게 보였기 때문이다. 뻘건 띠에 금줄을 감은 역장 모자를 쓴 사람(역장)이 작은 호주머니(포켓)에서 점잖게 꺼내 보던 그 회중시계, 그 모습이 지금까지도 잊어버릴 수 없는 풍경의 한 토막으로 남아 있다. 그러한 여유 있는 스타일.
  그리고 영화에서 보던 늙은 귀족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물려주던 그 금딱지 회중시계, 아마 대대로 물려주는 듯 싶었다.
  얼마나 좋은 유산인가. 수억의 재산을 물려주는 것보다 회중시계 하나 물려주던 그 광경이 역시 지금까지 오래오래 내 기억을 상쾌하게 해주고 있다. 할아버지가 오래오래 쓰던 그 회중시계, 그리고 자기도 그것을 자기 자손에게 물려주겠지만, 이러한 상속 풍경이 웬일인지 나에겐 소중이 회상되곤 한다.
  아무리 새 것, 새 제품, 좋은 것이 생산되어 나온다고 해도 자기가 오래 쓰던 것을 물려주는 광경이야말로 아름다운 정신의 연결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을 한다.
  요즘은 소비, 소비, 새로운 것, 새로운 것, 이렇게 마음들이 들떠 있지만 오래 오래 종신을 이어가는 이러한 풍경들이 아쉽기도 하다.
  시간이야말로 실로 우리들의 생명이다. 시간 곧 생명, 생명 곧 시간, 나는 이렇게 생각을 하면서 평생 일분 일초를 아껴가면서 실로 그 시간을 살아 왔다.
  내일 모레가 내 나이 70, 고희의 나이가 되지만, 나의 생애를 회고해보면 그저 부지런히 살아 왔다는 생각밖엔 없다. 약속시간도 하나 어김없이 살아 온 나의 생애, 지금 생각해 보아도 하나 후회 없다. 이젠 다음과 같은 생각만 들 뿐이다.

  시간

  시간은 쉬임없이 흐르는 세월의 개울
  그 속에 내가 산다
  살다간 떠난다
  떠나선 밀려난다

  이 보이지 않는 집을 매일매일
  수시로 들락거리며
  세상을 구경한다

  구경하다가 내가 떠나면
  시간은 빈 집이 된다
  빈 집이 되면서 그저 떠내려갈 뿐이다

  어디로 가는지
  시간은 묵묵, 무언, 무답, 흘러가면서
  그저 바삐 지나가 버린다

  지나가 버리면 그 뿐 흔적도 보이질 않는다
  보이지 않으면서 남는 것은
  인간의 회상뿐이다
  “이렇게 시간에 있었다”고

  지금은 내가 보이지 않는 시간의 집에
  있지만,
  있는 동안 수시로 시간이 내 몸에
  세월을 긋지만,

  시간은 어디로 가는지, 그저 묵묵,
  무언, 무답,
  바삐 지나가면서 돌아보지도 않는다.

  이 돌아보지도 않는 시간을 살면서 조물주가 준 시간(생명)을 다 쓰곤 또 어디로인지 죽어서 가버리는 것이다.
  세상에 나와서 이렇게 죽을 때까지 실로 짧막한 시간을 우리들은 희•노•애•락, 그 아픈 과정을 밟으며, 겪으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 시간을 수시로 째깍, 째깍, 알려주는 것이 시계이다. 그러니까 시계는 우리 생존에 있어서 생명을 재주는 기계라고도 할 수 있다.
  이 세상에 나와서 내가 처음으로 시계를 가져본 것은 중학교 4학년 때였다고 기억을 한다. 요즘은 시계가 흔해서 유치원 아동들까지도 시계를 가지고 다니지만 내가 중학교에 다닐 때만 해도 그리 팔둑시계가 흔하지 않았다.
  그러한 때 나를 길러준 형님이 월부로 ‘씨마’라는 좋은 시계를 사주셨다. 학교에서 내가 수석을 해서 그 기념으로.
  내가 생각을 해도 참으로 고가였지만 그 문자판이 마음에 들어서 내가 골랐던 것이다.
‘씨마’가 그렇게 고가의 시계인지도 몰랐었다. 그저 문자판이 좋아서 택했던 것이다. 형님의 박봉은 생각하지도 못했었다. 그렇게 해서 나는 형님에겐 아주 미안했지만 그 고가의 시계를 손목에 차게 되었다.
  그걸 참으로 오래 손목에 차고 지냈었다. 그런데 해방이 되고, 교원생활을 하게 되고, 술울 마시게 되고 하던 중 술에 취해서 인사불성이 되어 잃어버렸다. 참으로 애석했었다.
  그 후론 여러 가지 잡스러운 것들을 차고 다녔다. 그러다가 1959년 가을에 스위스를 여행하게 되었다. 그 때 산 것이 ‘오메가’였다. 시인이라고 했더니 외교관 대우를 해준다고 30%를 디스카운트해 주었다. 그때도 그 시계의 문자판이 좋아서 사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외국에 나갈 때마다 문자판이 마음에 드는 회중시계 하나를 사고 싶었다. 그러나 그런 것이 없었다. 좀 현대적이면서도 고풍스러운 그런 것을 찾아보곤 했다. 그런데 눈에 그렇게 확 들어오는 것이 없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손목시계를 차고 다닌다.
  다니면서 강의시간이나 강연시간엔 꼭 손목에서 시계를 풀어 탁상 위에 놓고 강의 혹은 강연을 한다.
  그럴 때마다 회중시계가 생각난다. 멋도 멋이려니와 편리하기 때문이다. 시간을 보며 강의를 한다든지, 강연을 하면 하나 하나 차질이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안심이 되면서.
  내 나이 이젠 회중시계가 어울리는 나이가 되었다. 되고 보니 더욱 회중시계를 갖고 싶은 욕망이 생긴다. 마음에 꼭 드는. 문자판이 좋아야 한다. 예술적이면서 고풍스러운 것, 그것을 나는 갖고 싶어하는 것이다. 이제 하나 마련하려고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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