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사랑의 시인 조병화문학관입니다
 
 

제목: 조병화의 순수고독 순수허무 제707호


글쓴이: 관리자

등록일: 2020-06-25 07:57
조회수: 103
 
최초의 1분 최후의 1분

  명장(名將)이나 명선수가 지나간 자리엔 흥미진진한 기적 같은 얘기들이 남아 있는 법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명장이나 명선수였다는 건 아니지만 나로서의 잊을 수 없는 추억담이 흐린 안개처럼 남아 있다.
  나는 경성사범학교 2학년 3학기부터 선수생활에 들어가 동경문리대 럭비부를 거쳐 사회에 나와서까지 도합 10년 동안 선수 생활을 했었다. 그러니까 상당한 수의 시합을 한 샘이다. 어느 해였던가. 그때도 한국 대표로 소위 명치신궁대회(明治神宮大會)의 관서예선(關西豫選)에 출전하게 되었다. 제1회전에서 근기지방(近畿地方)대표인 무라노 공업과 대전, 이 팀은 그 해의 우승후보 팀이었다. 물론 우리 경사(京師)팀도 우승후보 팀이었지만, 제1회전에 지면 돌아올 면목이 없다는 각오들로 시합에 임했었다.
  우리 팀의 킥•오프로 볼이 중천에 떴다. 적진 10야드 라인 부근에서 루즈•스크램, 우리 편으로 굴러 나온 볼이 재빨리 스크램•하프를 거쳐 스탠드•오프, 인너로 돌자 펀드•킥, 볼이 적의 디펜스•라인을 넘어 떨어지는 순간 나의 손에 캐치, 적의 풀•백 하나 남은 적진을 독주, 30야드, 골•포스트 직하에 트라이. 이 진행이 불과 1분간의 일이었다. 이 통쾌감, 이것이 나의 최초 1분간의 추억담이다. 이렇게 해서 이 시합은 결국 35대0으로 승리를 했다.
  해방 후 우리나라에선 럭비 보급을 위해서 도시대항전(서울•인천•대구•부산)이 해마다 있었다. 서울 팀과의 결승전에서 나는 인천 팀으로 뛴 일이 있었다. 전반전 0대0, 후반전 거의 끝날 무렵까지도 스코어 없이 진행되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진 25야드 라인 안에서 빙빙 돌고 있었다. 날은 어두워지고 있었다. 그 순간 부라인드•사이드로 볼이 튀어나왔다. 얼떨결에 잡은 이 볼을 안고 터치•라인을 아슬아슬 독주한 것이 약 75야드, 적진인 골 안에 터치•다운하자 시합은 게임•셋. 이래서 3대0으로 우리 팀이 우승을 했다. 이것이 최후 1분의 추억담이다. 요컨대 통일과 긴장, 최초의 1분부터 최후의 1분간까지 선전(善戰)하는 것이 스포츠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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