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사랑의 시인 조병화문학관입니다
 
 

제목: 조병화의 순수고독 순수허무 제703호


글쓴이: 관리자

등록일: 2020-05-29 14:26
조회수: 44
 
시를 잃어 가는 세대

  한해가 가고 또 한해가 밝았다. 이미 그 새로운 한해를 향해 우린 한 발짝 내디딘 것이다. 움직이지도 않고, 변하지도 않고, 삭지도 않고, 항상 그 자리 그대로 깔려있는 이 유구한, 실로 유구한 이 시간 속에서 아, 얼마나 많은 인간들이 이렇게 한해 살다가 갔는가. 세월은 유수같이 흐른다지만 실로 유수같이 사라져가는 건 시간이 아니라 세상사, 인간 그 인간들이다. 이 한정된 목숨을 살다 가는 번개 같은 나그네들에게 순간이나마 영원을 맛보게 하는 건 시다.
  내일로 내일로 이끌어주며 그 넓고 깊은 신비한 세계를 잠시나마 구경시켜주며, 현실을 견디어내는 그 용기와 희열, 그 생기를 주는 건 바로 시다.
  따분하고, 불안하고, 불길하고, 고독한 이 현실 세계에서 그걸 용감하게 이겨나가게 하는 힘을 주는 건 바로 시다. 따분하면 할수록, 불안하면 할수록, 불길하면 할수록, 고독하면 할수록 더욱더 그 힘과 용기를 주는 건 바로 시다.
  ‘세속(世俗)의 세계를 파괴하고 영원을 보게 하는 가장 성능 높은 화약(火藥)’ - 이렇게 시를 말한 건 일본의 西脇順三郞이고 ‘세계의 황폐를 방어하고 인간 감성에 질서를 부여해 주는 것’ - 이렇게 시를 말한 건 미국의 렉스로드이지만 실로 시는 인간의 영혼의 샘이며 그 존재의 원천이 아닌가.
  그런데 요즘 시는 금전에 천대를 받고, 권력에 천대를 받고, 일반사회에 천대를 받고, 인간 그 자체에 천대를 받고, 가장 친밀해야할 젊은 청년들에까지 천대를 받고 있는 게 아닌가.
  특히 우리나라에선 시를 읽지 않는 민족, 시를 잃어가는 연대, 참으로 황막하기 짝이 없는 살벌한 정신사막 지대를 우리 인간들은 지금 살고 있는 거다. 어디 한곳 푸른 초원도 없는 돈과 권세의 먼지, 그 생존의 아우성 속에서. 하긴 시를 쓴다는 시인 자신들이 시를 죽이고, 시를 몰살하고, 시를 병신으로 만들고 있으니까. 시가 없는 세상, 그건 별이 없는 긴 밤에 불과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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