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사랑의 시인 조병화문학관입니다
 
 

제목: 조병화의 순수고독 순수허무 제701호


글쓴이: 관리자

등록일: 2020-05-04 09:52
조회수: 41
 
시는 삶의 숨소리

     살기 위해서 시를 쓴다
     사랑하기 위해서 시를 쓴다
     죽기 위해서 시를 쓴다

     때론 쓰리게
     때론 아리게
     때론 축축히
     때론 멍멍히
     때론 줄줄이

     버리기 위해서 시를 쓴다
     빈자리가 되기 위해 시를 쓴다
     혼자 있기 위해서 시를 쓴다

     아름다움의 외로움을
     사랑스러움의 쓸쓸함을
     깨달음의 허망함을

     연습하며
     실습하며

     비켜나기 위해서 시를 쓴다
     놓아 주기 위해서 시를 쓴다
     물러나기 위해서 시를 쓴다

     삶과 죽음, 그걸 같이 살기 위해서
     시를 쓴다
     소유와 포기, 그걸 같이 살기 위해서
     시를 쓴다
     상봉과 작별, 그걸 같이 살기 위해서
     시를 쓴다

     널 살기 위해서 시를 쓴다.
                        - 「어느 생애」

  이렇게 지금까지 나의 생애를 짤막한 시로 정리해 본 일이 있다. 사실 그랬다. 나는 내가 살기 위해서 시를 쓰고, 시를 살아오는 것이지 문학을 하기 위해서, 예술을 하기 위해서 시를 써온 것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의 작품의 주제는 ‘나’이며, ‘그 인생’이며 ‘그 죽음’인 것이다. 따라서 나의 작품의 소재도 ‘나 자신’이며 ‘인생 그것’이며, ‘죽음 바로 그것’이다. 따라서 나는 문학의 사조(思潮)를 따지지 않는다. 그 양식이나 형식을 또한 따지지 않는다. 때문에 나의 작품, 나의 시, 나의 언어는 나를 살리고 있는 생명의 호흡이며, 살기 위해서 고독과 그 존재를 허덕이고 있는 가쁜 숨소리, 바로 그것뿐이다.
  다만 주어진 조건 그 상황 속에서 때로는 항거하며, 때로는 순응하며, 나를 수호하는 데 열심 하였고, 나를 성장시키는 데 열심 하였고, 나를 사는데 열심 하였고 그 나라는 미지의 인간을 탐구하고 추구하는 데 열심 이었을 뿐이다. 따라서 나의 작품, 나의 시, 나의 언어는 사기가 없는 나의 존재의 증거, 바로 그것이다. 물론 문학(예술)은 상상적 창조라야 한다고 우기는 평가들도 많겠지만 현실 바로 그것이 나에겐 더 중요했던 것이다. 역사적, 숙명적 나의 그 현실, 그 속에서 실존해야 하는 현대인으로서의 성실한 자기응시(自己凝視), 그 속에서 감도는 나의 판단, 나의 정립, 나의 기록, 나의 정리, 그것이 나에겐 보다 더 책임 있는 나의 문학이라고 생각했으며, 생각하고 있는 거다.

  나는 나의 시로써 ‘나의 한국’을 열심히 살려고 했다. 나의 시의 출발서부터 지금까지 한국의 현대를 열심히 살아왔다. 지금까지 나는 23권의 창작시집을 출판했지만 그 매권은 그 해, 그해, 그 때, 그 때의 한국의 현실이었으며 나의 현실, 그 증언들이었다. 그러니까 나의 제1시집 『버리고 싶은 유산』(1949년 7월)은 해방후부터 우리나라 정부가 수립할 무렵의 우리 한국의 현실과 그 무정부상태 속에서의 나의 고독한 현실을 기록한 것이며, 제3시집 『패각의 침실』(1952년 8월)은 부산 피난시절의 비참했던 한국의 풍경과 그걸 견디어 내는 나의 풍경을 그린 것이며, 제4시집 『인간 고도』(1954년 3월)는 서울 수복 후 폐허화한 서울 한 복판 명동을 살던 시절의 황폐한 현실, 그 속에 살아야 했던 우리의 고독하고 선량한 시민들 그리고 나를 그렸던 것이다. 그러한 작업을 하면서 스스로를 위안하고 그 이웃을 위안하며 살았던 것이다. 그 서시에 이런 말을 적었었다.

     무리를 잃어버린 사람들은
     외로움을 안다
     그러나 이 외로운 사람들끼리
     또 하나의 무리를 서로 감지할 땐
     이미 이 외로움은 외로움이 아니다

  그리고 그 후기엔 다음과 같은 말을 집어넣었었다.

  ‘••••••도시의 감정과 군중의 감정에서 그대로 솟아오른 명동의 고독과 침투를 담아 본 셈이다. 고독은 인간에의 의욕을 포기치 않는 압축과 인내에서 오는 인간의 사랑이요, 침투는 인간과 인간, 군중과 군중 사이를 뚫고 부단히 흐르는 감정의 해류 - 애수와 같은 호소의 영감이다. 서류, 화폐, 조직, 이러한 문명의 콘크리트 틈바귀에 끼어 둥둥 외롭게 떠 있는 섬과 섬, 이 섬이 그대이고, 나이고, 인간인 것이다. 인간은 인간끼리 연락을 갖고 싶어 한다. 나는 이러한 위치에서 내 대화(시)를 찾아내고 있는 것이다••••••’

  나는 어려서부터 시를 좋아했고, 사랑해 왔다. 미동 보통학교 시절엔 아동문집(兒童文集)에 뽑히기도 했다. 그리고 경성사범학교 시절엔 〈조선어연구부(朝鮮語硏究部)〉에서 발행하던 《반딧불》에 습작이 실리기도 했다. 조선일보 주필로 있던 선우휘군도 좋은 시를 발표했었다. 선우휘하곤 동기생이었다. 그러나 나의 꿈은 시인이 아니었다. 시는 여가를 이용하기 위해서 읽었었다. 수업시간과 수업시간 사이에 있는 10분 혹은 5분 같은 토막토막의 시간을 알뜰하게 쓰기 위해서 시를 읽었었다. 시는 짧아서 좋았었다. 간단해서 좋았었다. 부담을 느끼지 않아서 좋았었다. 시간을 빼기지 않아서 좋았었다. 이러한 부담을 느끼지 않는 독서를 통해서 얻어 들이는 정신의 수양은 실로 대단한 걸 안겨 주었다. 나를 유쾌하게 만들어 주고, 용기 있게 만들어 주고, 부지런하게 만들어 주고, 호기심 있게 만들어 주고, 외로울 때 외롭지 않게 만들어 주고, 허전할 때 허전하지 않게 만들어 주고, 미지의 세계에로 나를 넓혀 주고 이끌어 주고, 언어의 맛을 통해서 깊은 사색의 생활을 만들어 주어 좋았었다. 시를 통해서 느끼고, 시를 통해서 사색하고, 시를 통해서 나를 만들고, 시를 통해서 나를 살아가는, 제법 시를 통해서 나를 철학하는 학창생활을 하게 되었다. 시가 유일한 고독의 벗이라고까지 생각하게 되었다. 이렇게 중학시절부터 실로 시를 살아 왔었다. 실로 많은 시집들을 읽어 왔다. 유명한 시인이건 유명하지 않은 시인이건 가릴 것이 없었다. 이해되는 시이건 이해되지 않는 시이건 따질 필요가 없었다. 이해되는 것을 찾아서 읽으면 되었고, 내가 좋아하는 시인의 작품을 찾아서 애독하면 되었었다. 이게 모두 ‘나에게 필요한 말’을 얻기 위한 갈망이었고, 열망이었고, 기쁨이었으니까.
  나에게 필요한 말이 필요했던 것이다. 유명한 말, 유명한 시인이 필요했던 것이 아니라 꼭 나에게 필요한 말을 해주는 시인이 필요했고 그러한 말이 필요했던 것이다. 따라서 나에겐 유행이 필요 없었다. 인기 시인이나 작가가 필요 없었다. 유행되는 베스트셀러 책들이 필요 없었던 거다. 어디까지나 나를 키워주는 말, 나의 성장을 위로해 주는 말, 나를 항상 부지런하게 깨우쳐 주는 말이 오직 필요했던 거다.
  이러한 나의 내부의 긴 계곡을 더듬어서 학교시절을 마쳤다. 그리고 한국은 일제에서 해방되었다.
  해방된 나의 조국, 한국의 현실에서 내가 얻은 것은 나의 운명을 바꾸어 놓은 좌절과 자학, 바로 그것이었다. 시를 쓰게 되었다. 좌절과 자학은 나로 하여금 고독한 시를 쓰게 했다. 일체를 포기하고 시를 썼다. 그것만이 나의 총생존(總生存)이었다. 시로 다시 살아났다. 다시 살아나길 시작했다. 그 살아나는 것을 배워 나왔다. 외부의 세계와 완전히 단절, 내부의 세계에서 다시 살아나길 시작했다.
  아프면 아플수록 시가 많이 나오고, 외로우면 외로울수록 시가 많이 나오고, 그리우면 그리울수록 시가 많이 나오고, 쓸쓸하면 쓸쓸할수록 시가 많이 나오고 포기하면 포기할수록 시가 많이 나오고 실로 깊은 영혼의 상처 속에서 많고 많은 시를 써왔다. 그것이 제1, 제2, 제3, 제4, 제5, •••••• 이렇게 많은 시집으로 엮어져서 나의 정신의 숙소를 만들어 주었던 것이다.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시를 썼을까. 축시, 조시, 기념시를 빼놓고서 천수백편이 될 거다. 이만큼 나의 상처는 깊다는 거다. 나의 병이 많다는 거다. 우선 나는 나 자신을 앓아 왔고 나의 환경을 않아 왔고 나의 시대를 앓아 왔고, 나의 조국을 앓아 와야 했다. 한 번도 건강하지 못했던 나의 시대를 앓아 왔던 거다.

     죽음으로 직행을 하고 있는 거다
     지하 5미터 그 자리로 직행을 하고 있는 거다
     어머니께서 물려주신 그 노자만큼
     쓸쓸히
     죽음으로 직행을 하고 있는 거다

     캄캄한 걸 살아 온 거다
     미움도 사랑도 모두
     가난한 풀밭 머리에서 가난한 풀만 뜯다
     가난에 쫓겨 다니며
     아까운 정들을
     캄캄히 살아 온 거다

     이긴 자로 하여금 쓸쓸케 하여라
     잡은 자로 하여금 쓸쓸케 하여라
     가진 자로 하여금 쓸쓸케 하여라

     죽음으로 직행을 하고 있는 거다
     지하 5미터 그 자리로 직행을 하고 있는 거다
     어머니께서 물려주신 그 노자만큼
     쓸쓸히
     죽음으로 직행을 하고 있는 거다.
                   - 시집 『밤의 이야기』에서

  이렇게 존재와 죽음 사이를 왕래하면서 시로 나의 길을 만들어 살아왔고 살아가고 있는 거다.
  때문에 시에 있어서 한 번도 쉬어본 일이 없다. 내 인생에 있어서 한 번도 쉬어본 일이 없듯이.    

  이제는 밖을 보면서 시를 써야겠다. 안으로만 보던 눈, 안으로만 듣던 귀, 안으로만 생각하던 사고, 안으로만 살던 나의 삶에서 벗어나 밖을 사는 삶의 시를 써야겠다.
  나의 이웃을, 나의 겨레를, 나의 나라를, 나와 공생(共生) 공존(共存)하고 있는 아픈 것들을 위해서 시를 써야겠다.
  내가 그 옛날 힘과 위안과 가치를 얻었듯이.

     자, 그럼
     하는 손을 짙은 안개가 잡는다
     넌 남으로 천리
     난 동으로 사십리
     산을 넘는
     저수지 마을
     삭지 않는 시간, 삭은 산천을 돈다
     등은 덴막의 여인처럼
     푸른 눈 긴 다리
     안개 속에 초초히
     떨어져 서 있고
     허허 들판
     작별을 하면
     말도 무용해 진다
     어느새 이곳
     자, 그럼
     넌 남으로 천리
     난 동으로 사십리
           - 「오산 인터체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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