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사랑의 시인 조병화문학관입니다
 
 

제목: 조병화의 순수고독 순수허무 제699호


글쓴이: 관리자

등록일: 2020-04-17 13:55
조회수: 186
 
집단의 고독

  무리를 잃은 사람들은 외로움을 안다. 그러나 이 무리를 잃은 외로운 사람들이 서로의 외로움을 서로 감지할 땐 이 외로움은 이미 외로움이 아니다.

  이 말은 내 제4시집 『인간고도(人間孤島)』의 서시다.
  공산당이면 공산당, 자유당이면 자유당, 문학가 협회면 문학가 협회, 문학가 동맹이면 문학가 동맹, 사장당이면 사장당, 교장당이면 교장당, 총장당이면 총장당, 이사당이면 시사당, 이렇게 확고하게 당(무리)에 속하고 있으면 그 당(집단)의 힘으로 공동 이익과 공동 방위 내지는 공동 자세를 취하게 된다. 이러한 생존 형태가 곧 우리 한국의 생존 형태가 아닌가. 나는 이러한 한국적 현실 속에서 그 많은 피해와 고독을 살아왔다.

  해방 후 내가 사회생활에 깊이 끌려 들며부터 수시로 절감했던 건 이러한 집단 속에서의 고독이었다. 하나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의 존재의 단독성(憺性) 그것에서 오는 선택과 고독, 나는 그걸 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여기에 낄 수도 없고 저기에 낄 수도 없는 나의 생리성, 나는 강한 혼자일 수밖에 없었다. 남을 이용하기도 싫고 남에게 이용당하기도 싫고 오로지 나를 지키는 자유와 고독 속에서 서로의 인간고도를 살았던 거다. 무리(집단)를 이용하고 무리(당)에 이용당하고 하다 인간들의 아우성 속에서 무리(집단)하고는 단절된 또 하나의 집단 이것은 집단 아닌 집단 아무데도 끼여 있지 않는 선량한 인간들의 무리, 그러하기 때문에 공포와 불안 고독과 희구 그 피해를 사는 무리들, 그건 조직 없는 조직, 우리 인간의 무리였다. 나는 이러한 보이지 않는 무리(조직) 속에서 위안과 힘을 얻어 역사의 응시자로서 그 많은 생존의 고독을 견디어 왔던 거다. 조직을 가진 자들의 행패와 그 무법의 행동, 민주주의는 그들을 합법적으로 강도로 만드는 한 방편이었다.

  당을 가진 자들은 그 당의 이름으로 단체를 가진 자들은 그 단체의 이름으로 얼마나 선량한 많은 동포를 못살게 굴었는가. 이러한 집단(무리)의 패거리들에게 피해를 입고 있는 무리를 잃은 선량한 인간들에게 나는 단절(斷絶)의 결합을 호소했던 거다. 문학은 선전이나 강요나 권유가 아니기 때문에 나는 그냥 고도의 절규를 허공에 떠 보냈던 거다. 그것이 얼마만큼이나 그 조직 아닌 조직, 무리들의 무리(群, 集團)에 동화가 되고, 깨달음이 되고, 이해가 되고, 위안과 힘이 되었는지는 모르나 집단에서 소외된 집단 아닌 집단, 우리들에게 하나의 저항(抵抗)의 신호가 되길 나는 생각했던 거다. 목적의식을 가진 집단과 피해 의식을 가진 인간고도의 집단, 우리들은 이용하기도 싫고 자유인(自由人)으로서의 지성(知性)의 고독을 살았던 거다. 현대의 노예 그들을 비켜가며.

  악랄한 인간들, 그건 합리적으로 남의 생존을 침해하는 자들을 말하는 거다. 집단의 힘으로, 머리수의 민주주의로, 체면이나 염치도 없이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남을 통째로 먹어버리는 인간들을 말하는 거다. 두목은 졸도들을 긁어모아, 그들을 이용하고 졸도들은 두목을 거들은 대가로 맞지도 않는 감투들을 나누어 받고 무자비하게 남을 먹어 버리는 방법, 이것이 한국적 민주주의라는 거다. 정상적인 머리론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한국적 민주주의, 교육을 받은 자들이 하는 악랄한 방법, 한국은 어딜 가나 그들이 먹고 돌아다닌다.

  표만 모으면 되고 거수하는 손만 모으면 되고 수단 방법 가릴 것 없이 구워 삶으면 그만이라는 사고방식. 지금 우리나라는 이러한 강탈하는 민주주의가 유행처럼 되어가고 있다. 대학사회에서서도 그렇고, 예술인사회에서도 그렇고, 학문사회에서도 그렇고, 소위 인간사회 중 최고 지성인이라는 이들이 모인 곳이 모두 이렇게 썩어가고 있다. 대학에서의 학생위원장 선거, 학회장선거가 모두 일반 정치인들의 선거풍경 그대로이다. 지성과 양심, 정의와 항거, 오로지 지조와 철학을 산다는 문인들의 사회를 보자. 이건 더 말할 수 없이 썩어 있다. 이건 작품을 쓰는 사람들이 아니라 이리 와서 와, 저리가서 와 ! 와 ! 로 작당을 지어 다니며 득표 공작들을 하고, 거수기들을 모으고, 가장 폭력을 싫어한다는 그들이 집단의 폭력으로 행패를 부리고 다니는 꼴을 본다. 옛말에 ‘자기 자신을 알라’는 말이 있다. 좀 곰팡이 난 말이라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자기 자신을 알아야 그것이 소위 ‘인간’이 아닌가. 민주주의는 만민에 평등하다 하지만 자기를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하는 말이다.

  어느 두목을 위해서 표를 찍어 주고, 거기서 나오는 이익배당금 같은 걸 나눠먹으며 다니는 거지들, 그런 현대판 노예들에게 민주주의라는 참 뜻이 통할 리 없다. 그들은 하나같이 나라의 최고 지성인이라 하고 최고 문화인이라고 하고 최고 예술인이라 한다. 그러한 작당꾼들이 뭐가 지성인이고, 문인이라는 말인가. 자기가 없는 인간들, 분별을 모르는 인간들, 자기 중심이 없는 인간들, 그건 거지 중의 거지, 노예 중에도 노예다. 그들은 하나같이 정당이 썩고, 정치인들이 썩고, 관리들이 썩었다고 한다. 잡지에 신문에 그들은 그들만이 양심이고, 지성이고, 정의라고 쓴다. 그들이 작당을 하며, 그들이 강탈을 위한 모략, 중상을 조직을 일삼아 다니면서 어떻게 그러한 양심을 살 수가 있을까. 자기가 올라서기 위해선 갖은 모략 중상으로 상대방을 죽이는 이 강탈적 민주주의 풍토, 나는 문인들의 사회에선 없을 줄 알았다. 그러나 오히려 악랄한 정경들이 전개되어 가고 있다. 질(質)이 아니라 수(數)의 폭력 세계로 썩어 들어가고 있다는 말이다. 돈이 많은 협회일수록, 명성이 높은 단체일수록, 상금이 많은 상일수록 이 싸움과 작당은 더 심해지고 있다.

  이러한 살풍경 속에서 한국의 학문, 한국의 예술, 한국의 문학은 상처를 입으며 신음하고 있다. 무서운 세상이다. 참으로 살벌한 세상, 그 틈에 끼여 살고 있는 이 굴욕, 차라리 무식꾼이 되고 싶다. 무리(群)를 잃은 사람은 외로움을 안다. 그렇다. 그렇다 하더라도 하나의 인간의 인간을 살아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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