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사랑의 시인 조병화문학관입니다
 
 

제목: 조병화의 순수고독 순수허무 제694호


글쓴이: 관리자

등록일: 2020-04-06 14:25
조회수: 131
 
가장 가난한 것은

  우리나라는 가난한 나라입니다. 이 가난의 원인으로서 고려대학교 조동필(趙東弼) 교수는 ‘가난하기 때문에 가난하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참으로 명언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의 가난 속에서도 가장 더 큰 우리의 가난은 무엇일까? 많은 생각을 해 본 끝에 ‘가장 가난한 것은 민족적 자존심이다’ 이렇게 나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실 우리들 같이, 한국 민족들 같이, 한국 국민들 같이, 단결력이 없고, 협력이 안 되고, 민족적 자존심이 없는 나라 이런 민족, 국민이 어디 있단 말입니까? 우리들에게 가장 가난한 것은 정신적 유산인 ‘민족적 자존심의 결핍’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그 원인은 바로 이러한 분위기를 조성해 왔고, 조성하고 있는 소위 인텔리들, 지식 계층들에게 있다고 나는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가장 안다는 사람들에게, 가장 아는 ‘체’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배웠다는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해외를 돌아다니고 해외 여러 나라를 구경했다는 사람들에게, 가장 영리한 사람들에게 있다고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가장 나라를 근심하고, 가장 민족을 근심하고, 가장 국민을 근심하는 ‘체’하는 인사들에게, 그 원인이 있다고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말끝마다 ‘우리나라는 ‥‥‥’ 말끝마다 ‘우리 민족은 ‥‥‥’ 말끝마다 ‘우리 국민은 ‥‥‥’ 하는 사람들이 가장 무얼 아는 ‘체’하면서 우리를, 우리나라를, 우리국민을 깎아내리는 데 그 큰 원인이 있다고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외국을 돌고 온 사람들의 말을 들어 보시오! 하나같이 저 혼자만 잘 났고, 남의 나라만 잘 살고, 잘 났고, 좋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끝에 하는 말은 의례히 ‘우리나라는 되먹지 않았다’라든지 ‘우리 민족성은 글러 먹었다’라든지 ‘우리나라는 하늘 아래 지옥이다’라든지, ‥‥‥ 하는 말로 자기 혼자만의 우월감에 취해서 흥분하고 마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나라, 우리국민, 우리민족을 걱정하여 이야기한다는 사람들의 이야길 들어 보시오! 우리나라, 우리국민, 우리민족은 틀려먹었다는 이야기들만 하다간 하나같이 ‘일본을 보시오, 미국을 보시오, 프랑스, 독일을 보시오, 영국을 보시오, 스칸디나비아 삼국을 보시오, ‥‥‥’ 하면서 의례히 ‘참으로 개떡 같은 나라입니다. 개떡 같은 국민입니다. 개떡 같은 민족입니다’하는 식으로 결국은 우리나라, 우리국민, 우리민족에게 오히려 해가 되는 이야길 지껄이는 것입니다.
  나는 국제 P.E.N. 클럽 회의(세계 문인 회의)의 일로 1957년에 동경에 1959년에 서독 프랑크푸르트 ․ 암 ․ 마인에 참석한 일이 있습니다. 그때 두루 여비가 닿는 대로 구라파와 아프리카, 아세아, 여러 나라를 자유스럽게 돌아다녀 본 일이 있습니다. 이러한 여러 나라를 여행하면서 나는 내 나라 코리아를 늘 비교하고, 생각을 해 보곤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먼저 이야기한대로, 우리나라가 가난하다 가난하다 하지만 가장 가난한 것은 무엇보다도 ‘민족적 자존심’이다 - 이건 경제적인 문제가 아니라 정신적인 문제이다 -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래서 내 나라 코리아에 돌아가선 이러한 정신적인 세계에 새로운, 맑고 순수한 민족의 자존심을 심는 작업을 해나가야만 하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사실 우리들은 너무나도 우리들 선배들에게서, 스승에게서, 민족적으로 활기 없는 것만을 이어 받았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썩은 분위기 속에서 꼼짝달싹 못하는 ‘패기 없는 청년’, ‘비굴한 청년’, ‘약한 청년’, ‘은태적인 청년’, ‘가련한 청년’ 시기를 지났음에도 국제적으로 진취성을 상실한 채 극동의 가난한 지방 청년! ‘국제무대의 주변인’이 되어버린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은 우리들 젊은 사람들의 죄가 아닙니다. 우리들을 이렇게 만든 소위 선각자라는 사람들, 지식인 ‘체’하는 사람들, 스승인 ‘체’하는 사람들, 지도자인 ‘체’하는 사람들의 자기 우월, 자기도취, 내지는 자기기만에서 ‘체’가 뿌려 놓은 큰 죄라고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생각을 해 봅시다. 우리들의 체격을! 동양에서 가장 건장하고, 튼튼하고, 잘들 생겼습니다. 우리들의 두뇌를! 일제시대 일본에서도 그랬고, 지금 미국에서, 서독에서, 프랑스에서, 모두 그 한국의 두뇌를 날리고들 있습니다. 이렇게 개인적인 면에서 훌륭한 자연의 재산을 선천적으로 타고 난 우리 한국의 청년들이 장래를, 미래를, 내일을, 주저하고, 근심하고, 굽히고 할 이유가 어디에 있단 말입니까!
  지구 위엔 우리들보다도 더 못 살고, 못 나고, 보잘 것 없는 나라, 민족, 국민들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우리들보다도 더 많은 하늘을, 더 맑은 공기를, 더 많은 생명을, 더 많은 웃음을, 더 많은 땅을, 더 많은 생존을, 더 많은 자유를, 누리고들 있는 것 같이 보였습니다. 그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그들은 우리보다도 더 가난하고, 못생기고, 보잘 것 없어도, 우리들처럼 민족적 자학, 민족적 굴욕, 민족적 위축, 민족적 자조(自嘲) 없이, 보다 순수한 자유와 우애 속에서 자랐기 때문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를 찾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참된 우리를 가져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참된 그 우리를 지켜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참되고 새로운 우리를 향해서 우리를 세워야 하겠습니다. 긴 긴 민족의 자기 학대에서 긴 긴 민족의 자기 멸시에서, 긴 긴 민족의 자기기만에서, 썩은 전통에서, 썩은 모랄에서, 썩은 기성의 베일에서.
  우리는 가난하지도 않고, 더럽지도 않고, 못생기지도 않고, 약하지도 않고, 뒤떨어져 있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바로 이곳에서 다시 출발해야 하겠습니다. 다시 출발해서 우리의 엄연한 자존심! 온 민족의 이 재산을 길러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욕되지 않는 떳떳한 그 우리를 확립하여, 우리 후배들에게 다시는 우리들이 받았던 그 민족의 그늘을 주지 않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태양의 자손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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