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사랑의 시인 조병화문학관입니다
 
 

제목: 조병화의 순수고독 순수허무 제693호


글쓴이: 관리자

등록일: 2020-03-03 15:50
조회수: 142
 
가득한 세상

  지금 세상은 어디나 가득하다. 사람으로 가득하고 돈으로 가득하고 물품으로 가득하고 사건으로 가득하고 생존으로 가득하고 죽음으로 가득하다.
  그 가득한 세상을 빽빽하게 바쁘게 허덕이며 살고들 있다. 이 긴장이 얼마나 계속될는지. 그러나 얼마나 계속될는지가 아니라 앞으로 더욱더 긴장도를 더해가며 인간 서로가 그 빽빽하고 빡빡한 쉴 곳 하나 없는 빠른 생존의 장을 살아야 할 것이다.
  내가 서울서 초등학교(당시 보통학교)를 다닐 때 서울(당시 경성)의 인구는 3십만녕이었다. 산이 있었고 숲이 있었고 빈 전차가 있었고 사람이 없는 골목이 있었고 사람이 그리운 공원아 있었고 넓은 구멍이 텅텅 뚫린 하늘이 있었다.
  그러던 것이 지금 서울은 인구 1천만의 터지는 도시가 되어버렸다. 사람 사람, 돈 돈, 물건 물건, 사건 사건, 생존 생존, 긴장 긴장, 산다는 게 생활이 아니라 건조하기 짝이없는 피곤의 연장이다.
  옛날엔 뭘 믿을 수가 있었다. 우선 자기를 믿을 수 있었고 그 믿는 자기를 먼 미래를 향하려 설계하여 하나하나 자기를 성장시킬 수가 있었다. 그리고 어느 정도 돈도 믿을 수가 있었다. 절약을 해서 저금을 해두면 몇 년 뒤엔 그것이 뭔가 편한 것을 만들어 주는 밑천이 되곤 했다.
  그러나 오늘날은 그렇지 않다. 반년 귀가 다르고 일 년 뒤가 다르고, 그 돈의 값어치는 해가 갈수록 하락이다. 어디 믿고서 저금을 해돌 수가 있는가. 사람도 그렇고 사랑도 그렇고 자기 일도 그렇다. 너무나 빨리 변하는 세상 뭐하나 믿을 것이 없다. 이 믿지 못하는 불행한 세월을 현대인들은 살고 있는 거다.
  얼마나 고독한 현장, 그 쓸쓸한 생존인가.
  풍요한 물질 시대를 자유롭게 사는 방법은 나에겐 하나밖에 없다. 포기하는 방법밖엔 없다. 포기하는 거다. 일체를 포기함으로서 얻는 이 자유, 세상이 어디나 가득하지만 나에겐 항상 비어있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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