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사랑의 시인 조병화문학관입니다
 
 

제목: 조병화의 순수고독 순수허무 제684호 백열일곱번째 서신


글쓴이: 관리자

등록일: 2020-01-03 16:34
조회수: 45
 
  다음과 같은 시가 자연스럽게 나왔습니다. 나의 시는 다 그렇지만.


     지금 이 자리, 이 고개
     참으로 먼 길도 왔구나
     앞으로 남은 길 생각하니 너무나 아득하여
     지금까지 온 길보다 멀구나

     이렇게도 먼 길을
     어머님을 어디로 가셨을까

     갈수록 비어 가는 길
     너무나 먼 하늘
     하늘이 텅 비어서 이 불안
     고독하다는 것이 이러한 것일까

     하늘은 높다, 넓다, 깊다
     길은 멀고 아득한 이 고개
     이 홀로

     어머님은 어디 메쯤 더 가야
     만나 뵐 수 있을까

     지금 이 자리, 참으로 멀리 왔구나
     남은 길은 아직도 먼 안개 가물가물.

                                 「지금 이 자리」


  지난 삼월 구일부터 원남동 원불교 교당 요청으로 아내의 천도제(薦度祭)를 올리고 있습니다. 십오일까지 일주일 간으로 되어 있습니다. 새벽 여섯시부터 한 시간 동안.
  나의 말년이 이렇게 되었습니다.
  이것도 어머님이 나에게 주신 운명이지요. 나의 전생의 업이라고 생각하며 정성을 다하여 고개를 숙이고 있습니다.
  어느새 봄은 완연히 돌아와 버드나무들은 파르스름하게 변해 가고, 성급한 개나리들은 벌써 노릇노릇 치어 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계절이 풀려 가면서 하늘이 넓어져, 어딘가 허전하고 불안하기만 합니다.
  하면서 당신이 걷잡을 수 없이 그리워집니다.
  그럼 또. 안녕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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