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사랑의 시인 조병화문학관입니다
 
 

제목: 조병화의 순수고독 순수허무 제679호 백열한번째 서신


글쓴이: 관리자

등록일: 2019-11-28 13:56
조회수: 5
 
  구정 연휴(설)에 생전 처음으로 집에 칩거하면서 (이월 이십칠일부터 이십구일까지) 하도 심심해서 ‘고향’이라는 것을 생각했습니다.
  나는 지금까지 대학 재직 중에도 토요일이고 일요일이고 공휴일이고, 하루라도 빠짐없이 늘 나의 작업실에 나와 있습니다. 작업이 있던 없든, 나의 습관처럼 제시간에 작업실에 나와 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기름값이 하도 호되게 올라서 기름도 아낄 겸, 한 번 집에서 쉬어 볼 겸해서 온종일을 집에서 꼬박 사흘을 보내 보았습니다.
  설날을 맞아 피곤도 하고, 이 세상 완전히 떠나서 아들딸들이 어떻게 설날을 보낼는지, 그 연습도 시켜 볼 겸해서 수원 큰집에 차례는 결례를 했습니다.
  그러나 쉰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기도 하면서, 설날이나 추석날이나 죽음을 걸고 찾아가는 ‘고향’이라는 것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고향은 자기가 태어나서 자기가 죽어서 묻히는 흙, 그 향기, 그 그리움이 아닐까요.
  자기가 태어난 흙, 자기가 그곳에 다시 묻히는 곳, 그리움, 그 향기, 그 본능, 그 귀향의 동물적인 향수, 이렇게 생각이 되었습니다.
  극단적으로 말해서 그것은 사춘기 청년들의 성욕과 같은 정열적인 그리움과 같은 것, 노년기에 있어서 죽음의 보금자리를 찾는 본능적인 마음가짐, 혹은 노년기에 있어서 더듬는 생명의 본향(本鄕)을 그리워하는, 그 무엇보다 본능적인 스스로의 향수 같은 그리움이 엉겨 있는 곳이 아닐까.
  스스로가 태어난 흙, 스스로가 그곳으로 돌아가려는 그 흙, 그 흙에 냄새가 서려 있는 향수, 이런 흙이 고향이 아닌가. 마침내 연어가 그러하듯이.
  이러한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모든 동물의 본능적인 향수라고 생각이 되었습니다. 그 향수가 지금 나를 키워 주고 있는 겁니다.
  그것이 어머니라는 흙입니다.
  어머님이 계시는 흙이요, 우주요, 내세이지요.
  그럼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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