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사랑의 시인 조병화문학관입니다
 
 

제목: 조병화의 순수고독 순수허무 제677호 백아홉번째 서신


글쓴이: 관리자

등록일: 2019-10-30 16:36
조회수: 15
 


  구십칠년도 오늘로 다 저물어 가고 있습니다. 나라로서는 이렇게 굴욕적인 해가 없었습니다. 실로 제 이의 국치의 해였습니다. 경제의 식민지, 참으로 통곡할 일이옵니다.
  국민소득 일만 달러라고 흥청대던 나라가 이렇게 바닥난 거지 나라로 되어 버렸으니, 행정하는 사람이나, 정치하는 사람이나, 국민들이나, 참으로 남부끄러운 나라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러한 해가 이러한 더러운 치욕스러운 역사를 남기고 저물어 가고 있는 겁니다.
  나로서도 참으로 어려운 한 해였습니다.
  새로 예술원 회장으로 재선이 되고 연초부터 『그리다 만 초상화』, 마흔네번째 시집 『아내의 방』, 마흔다섯번째 시집『그리운 사람이 있다는 것은』, 마흔여섯번째 시집 『황혼의 노래』가 출판되고, 일본어로 번역된 시집 『旅一近くて遠い異國の友へ』이 일본 오사카 가이후샤(海風社) 출판사에서 출간이 되고, 그곳 미야코 호텔에서 출판 기념회가 있었고, 칠월에는 마케도니아 시 축제에 참가하고, 오월에는 김삼주 교수와 파리 여행을 하고 했지만, 장기 입원하고 있는 아내 때문에 하루도 편안하게 지낸 일이 없습니다. 이것이 나의 운명이라고 하겠지만 너무나 견디기 어려운 나의 시련이었습니다.
  그리고 시월에 근 삼십여 년 그대로 쓰던 편운재를, 관리인이 교대된 기회로 멀쩡히 수리를 했습니다. 천이백만 원이 들었습니다.
  복잡한 일, 가슴 아픈 일, 해결되지 않는 일, 되도록 이러한 일들을 잊어버리고 살려 하니까(그렇다고 잊어버리지도 않지만), 사색하는 시간이 줄어들어 시도 잘 나오지 않고, 그저 멍하니 파이프만 피워 물때가 많습니다.
  ‘고독을 아름답게 길러 가자’는 철학이 떠오르면서도 참으로 쓸쓸하고 외롭고, 참혹한 어둠을 가슴에 품고 살아오고 있습니다.
  먼 그곳이 항상 그립습니다.
  그럼 또. 안녕하실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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