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사랑의 시인 조병화문학관입니다
 
 

제목: 조병화의 순수고독 순수허무 제666호 하흔네번째 서신


글쓴이: 관리자

등록일: 2019-09-04 10:53
조회수: 5
 

  오늘이 시월 일일, 이제 본격적으로 가을을 살고 있습니다. 낮이 짧아지고, 밤이 길어지고 있으면서, 왠지 불안하고 무섭기만 합니다. 지난 구월 이십팔일에 미국에 있던 큰딸 원이가 엄마 문병 차 왔다가 구월 이십팔일 돌아갔습니다.
  지금 아내는 방사선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병이 낫는다는 가망은 하나 없으나 환자의 통증을 좀 덜어 줄까, 하고 방사선 치료로 들어간 거지요.
  참으로 오래 끌고 가는 병세입니다. 죽어 가는 사람도 괴롭겠지만, 그것을 간병하고 있는 사람들도 보통 괴로운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복 중에서 가장 좋은 복은 편히 죽는 복이라고 전해지고 있지만 실로 지금 그것을 느끼면서, 나의 죽음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그 죽음이 나에게 올까, 하고.
  나에게는 믿음도 없고, 믿음이 있다면 그저 어머님을 믿고, 내가 죽으면 어머님 곁으로 가겠지, 하는 생각밖에는 없기 때문에, 종교를 믿고 사는 신자들하고는 아주 다른 내세관을 갖고 살고 있습니다. 내가 죽으면 어머님 곁으로 꼭 가야지, 하는 신념(信念)과 어머님 곁으로 가고 싶다, 하는 소원(訴願)으로 그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겁니다.
  그 죽음이 어머님의 힘으로, 그리 고통 없이 가리라 하는 생각으로, 그러나 아내의 고통을 어떻게 위로할 말이 없어서 이런 말을 하면서 위로를 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이 참을 수 없는 고통은 부처님이 주시고 있는 고통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고통을 겪고 오너라고, 그래야만 극락세계로 갈 수 있다고. 부처님이 당신을 극락세계로 인도하기 위해서 이렇게 모진 고통을 주시고 있으니, 참으시오, 참으시오.”
  사실 아내는 독실한 불자이며, 원불교의 법사이기도 합니다. 그 법사의 이름이 정해(靜海)입니다. 참으로 그 부처님을 믿는 마음, 한결같이 수십 년, 보통이 아니었습니다.
  그 불자가, 그 법사가 이렇게 중병에 걸려서 이루 말할 수 없이 고통에 시달리고 있으니, 이 고통은 ‘부처님이 당신을 극락세계로 데리고 가려고 하시는 일이니, 참으시오’ 할 수밖에.
  아, 이 고통, 부처님, 너무하십니다. 암울한 이야기만 했습니다. 그러나 늘 죽음을 생각하고 있어야지요, 그럼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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