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사랑의 시인 조병화문학관입니다
 
 

제목: 조병화의 순수고독 순수허무 제639호 예순여섯번째 서신


글쓴이: 관리자

등록일: 2019-02-07 10:25
조회수: 27
 
  내일이면 음력 설입니다. 이렇게 되고 보니 봄도 이제 멀지 않은 것 같습니다.
  오늘 아침 먼 독일에서 온 편지를 읽으며, 한없이 한없이, 아무런 까닭도 없이, 눈물이 나오더니 걷잡을 수 없이 눈물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편지를 보낸 사람은 Dr. RosKe - Cho(趙華鮮), 독일 문학을 전공하시는 분이라 합니다.
  나의 열 번째 시집 『낮은 목소리(1962, 중앙문화사)』에 크게 감동을 해서 그것을 독일에서 번역 출판하고 싶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시집 속에서도 「잊게 하옵소서」라는 시에 크게 감동되었다고 합니다.
  당신도 아시다시피 그 무렵 나는 손을 댈 수도 없는, 입술도 댈 수도 없는 어느 순결한 아름다운 기독교 여인을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때마침 어머님도 작고해서 어머님의 불교 세계와 애인의 기독교 세계를 합쳐서 이 세상의 허무와 실제, 그 먼 부재를 생각했던 겁니다.
  이 세상은 어디까지나 임시로 존재하는 가숙(假宿)의 자리요, 부재(不在)의 자리라는 생각으로 ‘어머니’ 라는 본향(本鄕), 그 영원한 원숙(原宿)을 찾아가는 슬픈, 외로운 나그네의 철학을 시로써 펴냈던 겁니다.
  어머님의 작고하신 나이 여든한 살을 추억하기 위해서 사행시, 여든한 편을 써서 실향민 영문학자 원응서(元應瑞) 씨가 경영하는 출판사에서 『낮은 목소리』라는 이름으로 시집을 출판했던 겁니다.
  열두 번째 시집 『쓸개포도의 비가(1963, 동아출판사, 사장 김상문)』도 이 『낮은 목소리』와 그 맥을 같이하고 있는 시집이지만, 그땐 한참 우리나라 시단에서는 소위 난해시(難解詩)라는 것이 소리 높여 판일 치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에게 항거하기 위해서 시는 소리 높여 절규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게 주어진 가장 낮은 목소리라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서 이런 이름을 생각했던 겁니다.
  실로 시는 인간에게 주어진 목소리 가운데서 가장 낮은 목소리 옵니다. 그 참된 가장 낮은 목소리지요. 가짜들이 소리가 높은 것입니다.
  그저 이런 편지도 올립니다.
  그럼 또.
    
△ 이전글: 조병화의 순수고독 순수허무 제640호 예순일곱번째 서신
▽ 다음글: 조병화의 순수고독 순수허무 제638호 예순다섯번째 서신
Copyright 1999-2019 Zeroboard / skin by enFr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