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사랑의 시인 조병화문학관입니다
 
 

제목: 순수고독 순수허무 제1089호 (『떠난세월 떠난사람』)


글쓴이: 관리자

등록일: 2024-05-28 11:43
조회수: 94
 
모윤숙毛允淑씨와 그 주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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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윤숙·변영로·김광섭·김광주·이헌구·이무영·백철·조중훈·전혜린·주요섭·김성한·
조경희·전숙희·박태진·피터현·전봉래·김창석·최영해·천성환·최자현·조병문·박양균·
양주동·안수길·이하윤·최정희·전광용·김종문·이영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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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곤 1·4후퇴가 전면적으로 있을 때까지 나는 전봉래씨를 서울거리에서 본 일이 없었다. 그랬던 것이 부산 피난 광복동거리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다. 웬일인지 대단히 피곤하게 보이면서 의기소침하게 느껴졌다. 군복도 초라하게 때가 묻어 있었고, 그 빨간 목도리도 거무칙 칙하게 늘어져 있었다. 깔끔한 그에겐 있을 수 없는 허탈한 모습이었다. 어느 한구석부터 붕괴해 내리는 거 같은 풍채였다. 몇 달인가 지나서 다시 그렇게 그곳, 광복동 네거리에서 만났다. 만나자마자, “조형, 돈 좀 있소?” 물어왔다. 벅적거리는 인파 속에서, 지극히 나직이.
호주머니에 있던 돈을 다 내보였다. 그 중에서 얼마인가를 집더니,
“그럼 다시.” 하면서 남포동으로 사라져갔다. 다음 날 아침, 그는 그가 단골로 다니던 남포동 ‘스타’다방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 유서와 더불어.

페노비탈을 먹었다. 1초가 지났다. 2초가 지났다. 3초가 지났다. 아무렇지도 않다. 바하의 음악이 흐른다. 나는 명백하게 살려 했오......

유서 그대로를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대강 이러한 문구였다. 나에겐 참으로 쇼크였다. 나에게서 가지고 간 돈으로 약을 산 것이 아닌가, 오랫동안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는 다음과 같은 추도시를 써서, 경향신문인가, 어딘가에 발표를 했다.

선회하는 세월 속에
난숙한 어린 황혼처럼 너는 가고
마침내
그것이 또하나의 변명처럼
나에겐
아무 소용도 없는 시가 늘어 간다.

항시
너는 짝 잃은 비둘기처럼 맑다.

그 많은 외로움이
너의 작은 비둘기 가슴을 두들기면
너는 홀로
연지와 같은 시를 토한다.

외로움은
아름다운 너의 눈에서부터 왔다.

눈에 어리는 상들리에 그늘에서
언제나 사람들이 그리워 날을 샌다.

억센 세월 속에
그것이 오히려 너에게 남은
단 하나의 명백한 반항인 듯이 가고

마침내 그것이 또 하나의 변명처럼
나에겐
아무 소용이 없는 시가 늘어 간다.

제목은 「찬란한 꽃다발은 없이」 - 전봉래 시인이 회상.
나의 제3시집 󰡔패각貝殼의 침실󰡕(1952.8.18. 부산에서, 정음사)󰡕에 수록을 했다. 그러니까 그가 자살한 건 1951년 여름이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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