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사랑의 시인 조병화문학관입니다
 
 

제목: 순수고독 순수허무 제1088호 (『떠난세월 떠난사람』)


글쓴이: 관리자

등록일: 2024-05-24 16:09
조회수: 95
 
모윤숙毛允淑씨와 그 주변
--------------------------------------------------------------------------
모윤숙·변영로·김광섭·김광주·이헌구·이무영·백철·조중훈·전혜린·주요섭·김성한·
조경희·전숙희·박태진·피터현·전봉래·김창석·최영해·천성환·최자현·조병문·박양균·
양주동·안수길·이하윤·최정희·전광용·김종문·이영순
--------------------------------------------------------------------------

1959년 여름, 그곳 런던에서 만나 술집에서 위스키 대접을 받은 일이 있었다. 그러니까 박태진씨는 1950년대 후반을 영국에서 지냈던 거다. 그때 나는 서독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렸던 국제PEN대회에 참석하고 구라파 여러 나라의 관광을 하던 길이었다. 마침 그땐 국제적으로 이름을 가지고 있는 피터 현(현재 대한항공 보도 고문)도 파리에 머무르면서 그가 번역한 시집 󰡔Voices of the Dawn」의 인쇄교정을 보고 있었다. 같이 식사를 하면서 나의 시도 번역되어 있다고 그 교정지를 보여주기도 했다. 「Squeezed Between City and Civilization」, 이것이 나의 시의 영역 제목.
그러니까 박태진 시인은 그 무렵부터 피터 현과 더불어 당시의 구라파 시인들의 동향을 잘 알고 있었던 거다.
1985년 9월이라고 기억한다. 희랍 코르부(corfu)라는 이오니아 바다에 떠 있는 아름다운 섬에서 제7차 세계시인대회가 있었을 때 박태진씨와 같이 참석, 다음과 같은 한 행 시를 박태진 시인에게 얼굴 그림과 같이 선사한 일이 있었다.

당신은 한국시단에 날라온 선교사 같소.

이렇게, 서양문물을 가장 빨리 한국에 알렸던 사람은 선교사였으니까. 그러한 뜻에서,
다방 ‘라 프륨’에서 처음으로 인사가 되고, 단골이 되고, 언제든지 들를 때마다 만나게 된 인사는 전봉래(全鳳來) 시인이며, 김창석(金昌錫) 시인이며, 박태진씨였다. 그러니까 나도 그렇고, 전봉래도 그렇고, 김창석도 그렇고, 박태진도 그렇고, 모두 문단 이전의 명동 나그네들이었다. 박태진씨는 먼저 이야기한 거처럼 영어·불어를 잘하고, 전봉래 씨와 김창석씨는 모두 일본 도쿄의 아테네 프랑세에서 불어를 깊이 공부한 무명 나그네들이다.
박태진씨는 그땐 이화고녀 영어선생으로 있었고, 전봉래씨나 김창석 씨는 직업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전봉래씨는 입을 열었다 하면 P. 발레리였고, 김창석씨는 스테판 말라르메였고, 박태진씨는 S. 스펜더나 W.H. 오든이었다. 이렇게 이들은 서구문학에 깊이 망향(望鄕)을 가지고들 있었다.
전봉래씨는 여간해서 말이 없었다. 말쑥한 얼굴에 꼿꼿이 콧대를 세우고, 굵은 눈알을 굴리고 있었다. 심히 청결하면서 고독한 표정이었다. 언제나 정돈된 복장을 하고 있었다. 한국전쟁이 일어나고 9.28수복이 되고, 문단에 있어서 문총파니, 동맹파니, 도강파니, 비도강파(피난 못간 사람들)니, 하는 살벌한 분위기 속에서 나는 비도강파로 몰려 있을 때, 도강파들의 꼴보기 싫은 광경을 피해서 문총구국대 종군 문인의 딱지를 하나 얻어 평양으로 군을 따라 올라간 일이 있다. 그때 그곳, 평양거리에서 전봉래씨를 만났다. 참으로 의외였다. 그가 군복을 입다니, 그리고 종군을 하다니, 평소에 내가 가지고 있었던 그의 인상은 회색적인 인텔리였었는데...... 하는 생각으로, 하여튼 반가워서 대낮이었는데도 어느 길가 술집에 들러서 평양 소주를 서로 돌렸다. 평양은 그의 고향, 그는 고향 바람을 쏘여서 그랬는지 서울에서의 행동보다 명랑하고 생기있게 보였다. 그는 검푸른 카키 군복에, 빨간 머플러를 목에 감고 있었다. 그리곤 전투모를 쓰고 있었다. 나는 소주를 마시면서도 이해할 수 없는 그 모순을 보고 있었다. 우울한 침묵만을 지키던 라 프륨의 전봉래씨가 아니었다. 그가 군복을 입다니. 나도 도강파 문인들이 흔히들 기세등등하게 입고 다니던 군복이 싫어서 평양까지 바바리코트를 걸치고 온 것이 아닌가. 일반 군중들에게 공포를 주던 그 군복들.
    
△ 이전글: 순수고독 순수허무 제1089호 (『떠난세월 떠난사람』)
▽ 다음글: 순수고독 순수허무 제1087호 (『떠난세월 떠난사람』)
Copyright 1999-2024 Zeroboard / skin by enFr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