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사랑의 시인 조병화문학관입니다
 
 

제목: 순수고독 순수허무 제1086호 (『떠난세월 떠난사람』)


글쓴이: 관리자

등록일: 2024-05-17 16:09
조회수: 91
 
모윤숙毛允淑씨와 그 주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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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윤숙·변영로·김광섭·김광주·이헌구·이무영·백철·조중훈·전혜린·주요섭·김성한·
조경희·전숙희·박태진·피터현·전봉래·김창석·최영해·천성환·최자현·조병문·박양균·
양주동·안수길·이하윤·최정희·전광용·김종문·이영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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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무렵 나는 전혜린(田惠麟)씨와 자주 명동 은성에서 막걸리를 마셨다. 서울법대생이라 했다. 한잔 마시며 놀라고, 두 잔 마시며 놀라고, 석 잔 마시며 놀랐다. 그 명석한 두뇌와 그 기억력, 그리고 순간순간 번개처럼 회전이 빠른 머리의 기능, 감동의 격정, 철학과 말, 그 시정에 대한 도취, 인생 존재에 대한 뜨거운 갈망, 동경, 회의, 두 사람의 혼은 범벅이 되어 한없이 취해들곤 했다. 그리고 뛰어난 그 어학력, 불어가 그러했고, 독일어가 그러했다. 한마디로 그것은 흥분의 불꽃이었다.
그 후 전혜린씨는 법대를 졸업하고 서독 뮌헨으로 유학을 떠났다.
1959년 7월, 나는 처음으로 구라파 여행을 하게 되었다. 괴테의 고향 프랑크푸르트에서 국제PEN 제30차대회가 있어서 요행히도 그 대표단에 끼게 되었던 거다.
주요섭(󰡔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로 유명함. 당시 경희대학교 문리과 대학 학장, 영문학 교수)씨를 단장으로 김성한(金聲翰 : 소설가, 예술원 회원)씨, 조경희(趙敬姬 : 수필가, 전前정무 제2장관)씨, 전숙희(田淑禧: 수필가, 전前국제 PEN클럽 한국본부 회장, 88서울대회 대회장)씨 그리고 나, 다섯 명이 참석을 했다. 그땐 여의도 비행장이 서울국제공항이었고, 쌍발 프로펠러 비행기가 있을 때였다. PAN회사의 항공권을 샀다.
프랑크푸르트까진 홍콩(2박) → 랑군 → 방콕 → 카라치 → 베이루트 → 이스탄불(2박) → 프랑크푸르트, 이런 코스였다. 프랑크푸르트에선 서독 PEN이 잡아준 베토벤가(街)에 있던 와그나 호텔에 투숙하게 되었다. 도착하자 나는 김과 엽서를 뮌헨에 있는 전혜린씨에게 보냈다.
다음과 같은 급히 쓴 엽서가 단번에 날아들었다.

김보다도 선생先生님의 짧은 한마디가 몹시 반가웠습니다. München에 들리실 수 없으세요? 저의 솜씨(하수下手)의 진지도 잡수시고 ....... 꼭 들리도록 해 보아 주세요. 혜린, (원문 그대로)

구라파 여행은 처음이고, 게다가 독일어도 못하고, 가고 싶지만 어떻게 그곳까지, 결국은 가질 못했지만 나중에 파리에서 뮌헨 경유 비엔나행 에어프랑스로 비엔나로 갔을 땐 뮌헨공항 비행기 내에서 참으로 무척이나 생각이 났었다.
몇 년 후, 전혜린씨를 종로 네거리에 있었던 ‘양지’다방 3층에서 만났다. 참으로 반가웠다. 그 흥분은 서독에 가기 전 ‘은성’술집에서의 그것과 대차가 없었다. 그렇게 전혜린씨는 일생을 흥분 속에서 사는 것 같았다. 항상 경외(敬畏)로운 존재 앞에서 천진난만한 어린이처럼. 귀국한 후 처음으로 만난 것을 기쁨 삼아 ‘양지’다방 뒷골목에 있었던 비어홀 ‘낭만’으로 갔다. 맥주를 들며 서로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옛날 ‘은성’에서와 같이. 헤르만 헤세에게서 그림엽서를 받았다는 이야길 했다. 헤르만 헤세는 독자들에게 반드시 답장을 쓴다는 이야길 들으면서, 자기 수채화 그림엽서로 답장을 쓴다는 이야길 들으면서. 나 보고도 그렇게 하라고 하는 이야길 들으면서.
그 후로는 전혜린씨를 만나지 못하고 있었는데 어느 해였던가 자살을 했다는 기사가 각 신문에 크게 보도되었다. 순간, 나는 넋을 잃고 멍하니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 짤막한 해후(Encounter)를 실감하며, ‘천재는 그러한 건가!’ 혼잣말하면서.
실로 전혜린씨는 천재의 불을 가지고 이 세상에 나왔다가 불을 살고 간 천재였다. 순간처럼 휙 지나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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