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사랑의 시인 조병화문학관입니다
 
 

제목: 순수고독 순수허무 제1079호 (『떠난세월 떠난사람』)


글쓴이: 관리자

등록일: 2024-04-23 11:10
조회수: 183
 
이해랑씨와 그 주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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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랑·성춘복·김광주·박동근·한노단·이인범·유치진·김진수·오영진·임긍재·박연희·
이진섭·윤용하·조영암·박인환·조좌호·조영식·방용구·백성희·황정순·오사랑·장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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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극단이 하도 많아서 일일이 기억할 수 없을 만큼 나날이 그 수가 늘어가지만 (소극장운동 등) 1950년대, 1960년대는 신협(新協)이 우리나라 대표적인 극단이 아니었는가 그렇게 기억된다.
기억이라는 것은 날이 지나갈수록 희미해져가는 먼 아지랭이 같은 거, 안개 같은 것이라 책임을 지는 이야기는 할 수가 없다. 그러하기 때문에 기록이라는 것이 인생에 있어선 대단히 중요하다고 늘 생각을 해오면서 그걸 철저하게 해오지 못하고 있다. 그래도 그런대로 해오곤 했지만 생활이 분주해지고 생활량이 급증해지고부턴 그 많은 사실들을 일일이 기록해둘 수가 없게끔 되었다. 때문에 과거에 대해서 정확하게 말할 수 없는 어름어름한 희미한 기억 속을 살아가게 되어간다. 이건 나로선 대단히 후회가 되는 일이다. 그러나 지금에 와선 그걸 어떻게 되돌릴 수 없는 일이 아닌가, 체념하면서도 아쉬운 마음 금할 수가 없다.
하긴 그땐 내가 지금에 와서 이러한 회고록 같은 걸 쓰게 될 줄이야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 아닌가. 그저 매일매일을 역사에 쫓기고, 불안에 쫓기고, 부조리했던 한국적 사회상황에 어지럽게 쫓기고, 하루하루를 연속이 없는 단절된 토막토막의 생존을 이어왔던 것이 사실이다. 기획과 계획이 서지 않았던 세월들, 항상 한국전쟁과 같은 연속 속에서 실존적 허무를 충실히 살아온 셈이다. 미래가 없었다. 먼 내일이 없었다. 내일이 없는 인생에 무슨 기록이 필요하랴, 하는 생각에 허무한 세월을 그저 하루를 전 인생이라 생각하며 실로 󰡔하루만의 위안󰡕(나의 제2시집)을 살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잘못이었다. 인생 단 하루를 산다 해도 정확하게 보고 정확하게 생각하고 정확하게 행동하고 정확하게 기억해 두어야 정확하게 죽을 수도 있는 것이다. 때문에 단 하루를 산다해도 기록이 필요한 것이다. ‘기록이 없는 인생은 먼지 같은 게 아니겠오?’ 언젠가 잉글랜드·스코틀랜드·네덜란드를 여행하면서 상남(尙南, 성춘복 시인)에게 이렇게 무심코 던진 말이 기억난다. 나에겐 그러한 잠재의식이 항상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무엇을 기록하느냐. 기록할만한 것이 있는가. 기록할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 있는가. 이렇게 따져볼 수도 있는 문제이지만, 한 개인의 인생 보잘것없는 존재라 하더라도 자기 자신에게 열심히, 그리고 충실히 산 인간에겐 충분히 그 기록할만한 값어치가 있는 것이다. 인간이 다 공적인 존재는 아니기 때문에, 그리고 그 공적인 생존은 아니기 때문에.
실로 인간은 개인을 사는 거다. 개인의 가치를 사는 거다. 개인의 인생을 평생토록 개척해가며, 그 개인의 향기를 살아가는 거다. 그러하기 때문에 모든 인간에 있어서 그 개인의 소중한 기록이 소중한 것이다.
이 글을 쓰면서 그러한 자책감을 강하게 갖는다. 나에게 그러한 기록이 보다 정확하게 남아 있다면 이 글도 보다 견고해질 것이 아닌가. 그리고 누락된 것이 없을 것이 아닌가. 이렇게 생각을 하면서, 하여간 먼, 희미한 기억을 더듬어가면서 이 글을 이어간다. 보다 중요한 것들, 재미있던 것들, 꼭 기록해야 할 것들을 누락하면서, 언뜻언뜻 머리에 떠오르는 것들을 잡아당겨가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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