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사랑의 시인 조병화문학관입니다
 
 

제목: 순수고독 순수허무 제957호 (『시의 오솔길을 가며』)


글쓴이: 관리자

등록일: 2023-02-21 12:44
조회수: 110
 

공존의 이유 12

깊이 사귀지 마세
작별이 잦은 우리들의 생애

가벼운 정도로
사귀세

악수가 서로 짐이 되면
작별을 하세

어려운 말로
이야기하지
않기로 하세

너만이라든지
우리들만이라든지

이것은 비밀일세라든지
같은 말들은

하지 않기로 하세

내가 너를 생각하는 깊이를
보일 수가 없기 때문에

내가 나를 생각하는 깊이를 보일 수가 없기 때문에

내가 어디메쯤 간다는 것을
보일 수가 없기 때문에

작별이 올 때
후회하지 않을 정도로 사귀세

작별을 하며
작별을 하며
사세

작별이 오면
잊어버릴 수 있을 정도로

악수를 하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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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想노트

이 시는 실로 많은 수난을 겪은 시입니다. 나에게 많은 피해를 준 시입니다. 나를 많이도 유명하게 해준 시입니다만, 그 반비례로 나를 많이도 괴롭힌 시입니다.
학생들이 좋아하는 것을 기회로 어떤 인쇄물에 나의 이름 대신에 성 오규스틴이라는 이름이 붙기도 하고, 또 어느 인쇄물에 유행가처럼 변절이 되어 엉뚱한 작품으로 되어 있기도 하고, 심지어는 책받침에 인쇄되어 널리 판매되기도 했었습니다. 지금도 그렇게 변질이 되어 팔려나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세상에 이러한 열등 국가가 어디 있겠습니까. 이러한 저질적인 나라가 어디 있겠습니까. 돈이 된다고 해서 뻔히 살아 있는 사람의 작품을 이름을 바꾸어서 팔아먹기도 하고, 유행가처럼 변질시켜서 팔아먹기도 하니, 이러한 열등하며 저질적인 나쁜 나라가 어디 있겠습니까.
물론 이렇게 제작을 해서 돈을 벌려는 제작자도 나쁘지만, 이러한 조작된 작품을 사는 독자들에게도 큰 잘못이 있는 겁니다.
하여튼 이 작품은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지고 있는 나의 작품 중의 하나입니다. 그렇다고 내가 생각하는 나의 대표적 작품은 아닙니다.
나는 어느 해 믿고 있던 친구에게서 큰 배반을 받았었습니다. 물론 믿고 오랜 세월을 사귀어 온 사람이지요. 참으로 인생의 동반자처럼 믿고 온 친구였지요.
그 동반자처럼, 친한 친구처럼 믿고 오던 친구에게 크게 배반을 당했을 때 얼마나 나는 당황했겠습니까.
나는 혼자서 술집으로 갔습니다. 그 술집 다이에 앉아서 싸구려 안주로 술을 몇 컵 들이켰습니다.
술이 온몸에 올라오자, 이 시가 지극히 자연스럽게 머리에 떠올랐습니다.
이 시 그대로 즉흥적으로 나의 시들은 즉흥적으로 나온 것들이 많습니다. 거의가 그렇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오히려 오래 걸려서 나온 시들보다도 이렇게 즉흥적으로 나온 시들이 정답고, 오래 그 수명을 유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나는 친구들 중에서 한 편의 시를 작성하는데 20년이 걸렸다든지, 10년이 걸렸다든지, 몇 년이 걸렸다든지, 하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참으로 이상스럽게 들리곤 했습니다.
죽은 사람을 말해서 안 되었지만, 죽은 송욱 시인이 같이 술을 마시다가 “조형, 나는 ‘백자 항아리’ 한 편을 쓰는데 3년 걸렸소" 하는 소리에 어안이 벙벙했었습니다. 나는 그런 일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많이도 고통스러웠다고 합니다. 시를 쓰는 것이 대단히 고통스러웠다고 했습니다.
순간 나는 그럼 그렇게 고통스러운 시를 왜 쓰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한 번도 그러한 고통스러운 경험을 해 본 일이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즐거워서 썼기 때문입니다. 흔히들 시는 어렵고, 고통스럽다고들 합니다.
그 말이 나에겐 우습게만 들리곤 했었습니다. 시다운 시도 못 쓰는 사람일수록 그러한 말을 하기 때문에.
요즘, 나는 나의 건강을 위해서 시를 쓰고 있습니다. 물론 첫째로는 정신의 건강이겠지요. 다음으로는 육체적인 건강입니다. 정신이 시원하면 내 몸도 시원합니다. 그러니까 통틀어 나의 건강을 위해서 시작업을 하고 있는 겁니다.
시를 쓸 땐 참으로 정신이 맑아지고 마음이 기뻐지는 겁니다. 아무리 어두운 시를 쓰고 있더라도. 산문을 주문받아서 쓸 땐 고통을 느끼면서 그 책임을(원고청탁 받은) 다하지만, 시는 나의 영혼의 작업이기 때문에 그렇지 않습니다.
시는 실로 나에게 있어서는 즐거운 인생의 작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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