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사랑의 시인 조병화문학관입니다
 
 

제목: 순수고독 순수허무 제803호 (시로 쓰는 자서전 세월은 흐른다)


글쓴이: 관리자

등록일: 2021-08-31 15:56
조회수: 8
 
64 아리산阿里山의 소녀少女

집을 떠나는 날 인생은 시작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날, 그건 끝난다.

멀리 가면 갈수록 그만큼
가까이 오면 올수록 그만큼
폭과, 깊이, 그 넓일 왕래하다 간다.

지금 이곳 아리산阿里山 산정
해뜨는 아침
햇살 쪼이며 빛을 사는 이국의 소녀
집을 나와서 하늘을 돈다

내려다보아도, 굽어 보아도
보이질 않는 인간의 마을
미운 사람도 고운 사람도
엉겨서 정을 사는 인간의 마을
그리워지는 건 사람의 마을이다.

태양의 딸이여! 소녀여
늙질 마라.
지구의 꽃이여! 소녀여
시들질 말라.

아리산阿里山 높은 가지
하늘의 날개여.

                                시집 『별의 시장(市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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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봉(吳鳳)의 이야기로 유명한 아리산(阿里山)에 오르는 철도는 좁은 철길이었습니다. 아슬아슬하기도 했습니다. 이곳으로 오르는 태북ㆍ고웅선 간이 철도역은 가의(嘉義)인데 이 가의 역전엔 거대한 오봉(吳鳳)의 동상이 있었습니다. 거대한 말을 타고 있는 웅장한 동상이었습니다. 이곳 대만 원주민은 그 옛날엔 식인종이라 했습니다. 이 식인종의 풍속을 시정하기 위해서 스스로 희생되었다는 전설 비슷한 실제의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으며, 이것이 국민학교 국어 교과서에도 실려 있었던 겁니다.
  가의역에서 한두 시간 반쯤, 급한 산을 타고 좁은 궤도의 기차는 힘겹게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급한 철도 연변엔 바나나 나무들이 잘 재배되어 있었고, 파파야 열매들도 노랗게 보이곤 했습니다.
  산정엔 아리산빈관(阿里山賓館)이라는 현대식 호텔이 번듯이 서 있었습니다. 놀랐습니다. 이렇게도 높은(해발 2,000미터) 산정에도 이렇게도 큰 멋있는 호텔이 있나, 하고요. 이곳에서 투숙을 하게 되니 마침내 내가 국빈대우라도 받는 것 같은 감회가 들었습니다.
  이곳에서 묵으면서 아침 일찍, 호텔에서 준비해 준 두툼한 겨울옷을 입고, 미니버스를 타고 한 300미터 더 올라가는 일출전망대까지 가서 그 화려찬란한 해돋이를 보는 겁니다.
  사방은 구름의 바다, 그 구름 위로 솟아오르고 있는 높은 산봉우리들, 그곳으로 붉은 햇덩어리가 솟아오르는 겁니다.
  그 전망대 난간에 어린 소저(小姐)가 아름답게 비춰들었습니다. 저렇게 어린 소녀가 어떻게 혼자서 이렇게 높은 산정까지 올라왔을까, 하는 감동에 이러한 시를 쓰게 된 겁니다. 그렇습니다. 집을 떠나야 집을 알게 되고, 길을 알게 되고, 고독을 알게 되고, 인생을 알게 되고, 자기 자신을 알게 되는 겁니다.
  인생은 집을 떠나서 집으로 돌아가는 긴 여정이옵니다.
  나는 이러한 고독한 철학을 어려서부터 살아오면서, 그 긴긴 노상(路上)에서 나를 찾아가는 이러한 시들을 쓰고 있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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