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사랑의 시인 조병화문학관입니다
 
 

제목: 한결같이 나직하고 친근한 목소리 / 朴在森


글쓴이: 관리자

등록일: 2005-04-10 18:13
조회수: 5265 / 추천수: 107
 
한결같이 나직하고 친근한 목소리/朴 在 森(시인)
  --조병화 전집 2권(학원사,1988)에서 부분 발췌

  
  도대체 난해성의 시라는 것을 그의 시는 철저히 배격하고 있다. 어디까지나 ‘읽히는 시’를 그는 언제나 내걸고 있는 것이다.
  사실, 내용을 공연히 어려운 사고나 표현으로 호도(糊塗)하고 있는 시가 버젓이 현대시라는 미명 아래 옹호받는 예가 얼마나 빈번했던가. 그의 시는 거기에서 벗어나 있어 우선 안심이다. 늘 읽힌다는 강점(强点) 위에서만 존재해 왔다.

리홍(麗紅)

말더듬는 말 속에
천 년의 동양이 흐르는 밤
맑고 흰 목소리에 마음이 젖는다
―《리홍(麗紅)》부분

포토밭과 올리브나무 밭이
향수어린 유화집처럼 경사진
이태리 중부 낮은 산간 지대
플로렌스는
그 옛날
‘인간의 혼’이 부락을 지어 한때 살다 간 자리
이탈리안 르네상스의 요람이라는 곳

인간이 인간의 목소리로 살다 돌아간 자리
나는 지금 지구 한구석
자연을 여행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마냥 시간의 계곡을 따라
역사를 더듬어 다디고 있는 것
―<플로렌스> 부분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은
인생의 변두리
시가 가끔 찾아 주는 곳

참나무 소나무 머루 다래
싸리꽃이 총총히 피어 있는
잡나무 숲
당신도 한 번은 찾아 줄 수 있는 곳이다

사람이 그리워지는 곳
십 리 이십 리 삽십 리 뜸뜸이 떨어져서
아침을 기다리는 곳

울타리 나직이 불을 괴고
밤을 새워서도 이야기가 남는 곳이다

세상을 걷고 떠나는 사람이
하늘로 직행을 하는 곳

살아 있는 사람의 목소리보다
죽은 사람의 목소리가 가까이 들리는 곳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은
인생 변두리
하늘에 가장 가까운 자리

밤과 낮이 소곤소곤
헤어지다 만나곤 하는 곳이다
―<밤의 이야기․2>

  시집에서 아무렇게나 뽑아 본 것이지만, 언제나 한결같은 나직하고 친근한 목소리로 다가오는 것이다.
  그의 시에서는 어디서든 난해한 데라곤 없다. 그저 술술 읽히는 마력(魔力)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소곤거리듯이 하면서 강한 호소력을 발휘하는 비밀은 어디에 기인하는 것일까.
  그것은 어려운 낱말이나 공연히 톤만 높은 이상한 격조(格調)를 그는 다같이 배격하고, 마치 빗물처럼 은은히 독자의 가슴에 스며오기 때문일 것이다.
      김 소월에게서는 한국인의 뼈에 저린 한(恨)을 느낀다면, 조 병화에게선 그와 다른 도시인의 페이소스라 할까 슬픔이라 할까를 느끼는 것이다. 전자가 매운 것을 호소해 온다면, 후자는 약간 달콤하기까지 한 것을 호소해 오는 것이 아닐까. 김 소월에게서 받는 것은 니힐리즘의 정조(情調)라고 한다면, 조 병화에게서 받는 것은 도시의 서민이 가진 센티멘털리즘으로, 가려운 곳을 긁어준 것이라고 본다. 비를 맞는 것을 이 두 시인의 처지에서 본다면, 전자는 가슴에 아프게 새기는 것이었다면, 후자는 슬프게 새긴 것이 아니었을까.
  문득, 센티멘털리즘을 우리 나라에서는 지나치게 배격․멸시했다는 생각이 든다. 주로 그것은 감상(感傷)주의적인 측면만 강조하고 주정(主情)주의적인 측면을 무시한 것으로, 이를테면 한쪽에 기울어져서 수용(受容)했던 것은 아닐까. 나는 주정주의적인 측면에서, 문학을 하려면 우선 이 센티멘털리즘에 강하게 철할 줄 알아야 길이 트인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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