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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고독과 구원 / 李炯期


글쓴이: 관리자

등록일: 2005-04-10 18:13
조회수: 5237 / 추천수: 128
 
고독과 구원/李炯期(시인)
  --조병화 전집 3권(학원사,1988)에서 부분 발췌


  <나는 이렇게 시를 쓴다>는 제목의 글에서 조 병화 씨는 ‘내가 산 세계를 충실히 쓰고 싶어’ 시를 쓴다고 말한 일이 있다. 그리고 거기에 다시 덧붙여 ‘문학이니 예술이니 하는 문제보다도, 나의 관심거리는 어떻게 살 건가? 그리고 어떻게 죽을 건가? 하는 생존의 문제’였다고 밝히고 있다.
   이러한 태도로 시를 쓰는 시인은 그 시의 예술적 성공 여부보다도 그 자신의 인간적 진실을 더 중시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독자는 대체로 시의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그들 역시 예술적 성패보다는 그러한 시인의 인간적 진실에 더 큰 공감을 느끼게 된다.
  더구나 조 병화 씨의 경우는 그 인간적 진실이 독자들 자신도 혼자 있을 땐 깊이 생각하기 마련인 문제, 즉 어떻게 살고 어떻게 죽을 것인가 하는 문제에서 비롯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씨는 독자들의 눈에 시인이란 이름으로 높이 도사리고 있는 특별한 인물이 아니라 고뇌와 아픔을 함께 나누고 그리하여 위안을 받을 수 있는 마음의 친구로 비치게 된다. 조병화 씨가 우리 나라에서 가장 많은 독자를 확보한 시인이 된 이유의 중요한 하나는 여기에 있다.
   ‘사람은 스스로의 “공”을 살아가옵니다’라고 시작되는 시 <47>에는 숙명적으로 각자의 ‘공을 살아가는 인간의 고독한 모습이 부각되어 있다. 그리고 우리는 여기서 조병화 씨의 기본 주제인 인간의 근원적 고독을 발견 할 수 있게 된다. ‘공’이 갖는 숙명성과 실존성은 그 자체가 곧 인간의 근원적 고독을 의미하는 것이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염세나 절망의 사상으로 연결되기 쉬운 이 고독의 인식이 그러나 조 병화 씨에게 있어서는 구원의 사상으로 승화되고 있다.

  아름다운 것은 실로 외로움이옵니다
  지혜로운 것은 실로 외로움이옵니다
  평화로운 것은 실로 외로움이옵니다
  은혜로운 것은 실로 외로움이옵니다
            -(43)

  이 시에 분명히 나타나 있는 그 구원의 사상을 이해할 수 있는 열쇠는 일체의 집착을 버린 ‘공’이 더 큰 소유를 가능케 한다는 데 있다. 그때의 ‘공’은 구원이다. 그리고 그것은 인간의 근원적 고독과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고독은 구원으로 승화될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것이다.

  인간은 혼자서 죽는 것
  인간은 혼자서 죽는 것
  (중략)
  사랑을 한다 하며
  서로 손을 잡아도

  모든 것 서로 다 알아
  할 말이 없다

  이 시가 씨의 기본 주제인 인간의 근원적 고독을 솔직 간결하게 표현한 것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아무리 많은 수사를 동원해도 이 시의 연에 두 번 되풀이되고 있는 그대로 필경 ‘인간은 혼자 죽는’ 고독한 존재인 것이다. 삶이란 그 죽음을 향해 가는 과정이기 때문에 인간은 또 모두가 죽음을 사는 존재이기도 하다.
  그리고 죽음이 혼자만의 것이라면 죽음을 향해 가는 과정인 삶 또한 혼자만의 것이 아닐 수 없다. 한데도 인간은 현실적으로 수많은 타인을 만나고, 그리하여 그들과 더불어 서로 고독을 달래며 살아가고 있다. 그러한 인간의 만남 가운데서 그 연결이 가장 깊고 또 가장 튼튼한 것은 사랑이다. 그러기에 인간은 고독하면 고독할수록 사랑을 갈구한다.
  그러나 그 사랑도 혼자 죽어야 할 인간의 근원적 고독 앞에서는 한갓 무력한 몸부림에 불과하다. 그리고 인간의 의식의 심층부에는 이 점에 대한 잠재적 자각이 도사리고 있다. ‘사랑을 한다 하며/서로 손을 잡아도/모든 것 서로 다 알아/할 말이 없다’는 침묵은 그러한 잠재적 자각이 의식의 표면에 떠오르는 결과인 것이다.
  그렇다면 사랑은 처음부터 아예 부정되어야 할 것이 아닌가라는 반문이 제기될 수 있다. 사랑이 부정된다면 그 사랑을 정점으로 하는 일체의 만남이 또한 의미를 잃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일체의 만남이 사랑을 부정하고 혼자만의 힘으로 죽음을 살아갈 만큼 강한 존재가 아니다. 바꾸어 말하면, 인간은 자신이 혼자 죽어야 할 고독한 존재임을 잘 알면서도, 동시에 그로부터 벗어나 보려고 끊임없이 발버둥치는 모순에 찬 존재인 것이다. 조병화 씨는 이 허무의 심연 앞에서 단순히 두려움에 떨거나 한숨만 쉬거나 하는 시인이 아니다.
  오히려 씨는 그것을 조용하게 받아들인다. 이 수용을 가능케 하는 것은 니체가 말하는바 운명애적 태도를 씨가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바꾸어 말하면, 씨는 죽음이라는 그 허무의 심연이 인간을 인간으로 있게 하는 기본 조건이라고 보고 그 주어진 한계 안에서 정직하게 또 성실하게 살아가려고 하는 것이다.
  이러한 경우 인간의 삶은 바로 그 죽음이란 한계 때문에 본질적으로 슬프고, 그러므로 씨가 정직하고 성실하게 산다는 말은 그 슬픔, 그 외로움에 보다 철저해진다는 의미의 함축을 갖게 되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아
  너는 내 비밀을 아느냐

  나는 아직 어려서

  슬픔이 나의 빛
  나의 구원
  나의 능력

  사랑하는 사람아
  너는 내 비밀을 아느냐

  나는 아직 어려서

  외로움이 나의 빛
  나의 구원
  나의 능력

  슬픈 자리
  그래서 산다
   ―<너는 나의 빛>

  이 시에는 앞에서 말한 바 슬픔과 외로움에 철저하려는 조병화 씨의 삶의 모습이 절절한 언어로 표현되어 있다. 그리고 그러한 삶이 씨에게 있어서는 빛과 구원을 의미한다는 사실도 이 시도 또 보여 주고 있다. 근원적으로 슬프고 외로운 존재로 태어난 것이 인간인 만큼 자신의 진실을 다해 그 슬픔을 슬퍼하고 그 외로움을 외로와하는 것이 그의 빛과 구원으로 되는 것은 역설이 아니라 당연한 귀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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