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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외로움을 얽매는 두 개의 형식 / 김윤식


글쓴이: 관리자

등록일: 2005-04-10 18:11
조회수: 5712 / 추천수: 111
 
2.외로움을 얽매는 두 개의 형식/김 윤 식(평론가,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조병화 전집 10.(학원사, 1988)에서 부분 발췌

   사랑이라는 것은 이와도 같이
  외로운 시절의 편지라고 생각을 하며
  차창에 기대어 추풍령 마루를 넘으면
  
  거기 낙엽이 지는 계절이
  늙은 산맥에 경사지고

  인생과 같이 외로운 풍경은
  언젠가는 나도 돌아가야 할
  그 날의 적막과도 같이
  긴 차창에 연속하였습니다

  1952년 12월
  정오의 태양이 파란 가슴에 고여들고
  나는 먼 보헤미안 시절의 그와도 같이
  차창에 기대어

  사랑이라는 것은 이와도 같이
  외로운 시절의 편지라고 생각에 잠겨 갔습니다
                 -〈차창〉 전문

  외로움을 말하는 방식이 조지훈에 있어서는 발견으로서의 놀라움이어서 조용한 것이었고, 워즈워드에 있어서는 회상 속의 놀라움이었다. 둘다 외로움 속에서였고, 그 때문에 외로움은 그 자체가 축복의 표정을 띨 수가 있었다. 조병화에 있어 <차창>은 열차의 소리만큼 겉으로 드러난 외로움이다. 외로움이 내면화되지 않고 겉으로 드러났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그것은 우리에게 외로움을 직접적으로 호소해 온다는 뜻이기도 하다. 차창을 통해 펼쳐지는 풍경은 결코 내면화될 수 없다. 풍경은 시각의 소관이기 때문이다.
풍경이 겉으로 드러난 사각형이라 했지만 이 풍경 속에는 시인 조병화의 시적 본질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는 점이야말로 내가 이 시에 주목하는 이유다. 그것은 여행의 형식과 편지의 형식이다(졸고,<현대문학> 83. 8. 참조). 경부선이 모든 여행을 대표하고 있다. 적어도 50년대 전기간을 통해 경부선만큼 여행 자체를 대표하는 것은 따로 없다. 경부선은 시골 소달구지로 여행하는 순탄한 길이 아니다. 그것은 현대적인 산물이고, 속도를 원칙으로 하는 증기 기관의 후예이다. 이러한 근대적 지향성에 여행이 맺어져 있는 만큼 ‘방랑’의 의미를 띤 전근대적 여행과는 성격이 썩 다르지 않을 수 없다. 우리 문학에서 방랑의 시학은 오상순 한 사람밖에 없다. 오상순은 구름 위에 보금자리를 틀어 놓은 유일한 시인이다. 목적 없이 돌아다니는 멋이 방랑인 만큼 그 자체가 외로움이다. 이 점에서만 보면 조병화의 여행은 목적을 가진 것이다. 그렇지만, 그 목적은 그로 하여금 경부선을 태우게시피한 것이지만 경부선을 타고 차창에 풍경이 펼쳐지자, 깡그리 잊게 되는 것이기도 하다. 여행의 목적을 잊게 만든 것이 외로움이다. 추풍령 산맥의 경사처럼 시인의 외로움은 풍경에로 튀어나가 어느새 풍경 속에 용해되는 것이었다. 외로움이 겉으로 드러났다는 것은 이런 뜻이다. 경부선만이 갖고 있는 힘이다. 서울에서 부산까지의 경부선이 외로움에다 형식을 부여했기에 이 작품은 어느 경우보다 확실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 여행의 형식만으로는 경부선이 지닌 근대적 성격, 곧 속도 때문에 단순함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또 다른 형식이 그 속도를 조절할 필요가 있었다. 편지의 형식이 그것이다.
편지란 무엇인가. 외로움이다. 실용적인 측면을 빼면 외로움만이 편지 속에 남게 된다. 외로움이 그 형식을 얻지 못하면 길잃은 영혼처럼 방황하게 된다. 방황하는 영혼은 언제나 위험한 존재이다. 사람에게 해코지를 하는 것도 그 탓이다. 영혼에 형식을 부여하는 일이 예로부터 있어 왔다. 이른바 진혼굿이 그것이다. 진혼굿, 진혼곡 따위는 넓게 보면 영혼의 형식 부여 행위이다. 형식은 질서이고 감옥이고 부자유이고 안정감이다. 그러기에 형식은 어떤 경우에도 질서 부여를 위한 억압의 일종이다. 외로움의 경우도 이와같다. 그냥 방치해 두면 방황하는 외로움은 짐승처럼 울부짖으며 우리의 일상적 삶 속에 해코지를 하고자 덤빌 것이다. 우울증 환자들이란 외로움이 그의 가슴 위에 올라타고 해코지를 하고 있는 상태라 볼 수 이를 치유하는 길은 무엇인가. 진혼굿을 하듯 외로움에 형식을 부여하여 대낮의 사상으로 바꾸는 일이 반드시 요청된다. 외로움에 형식을 부여하여, 외로움으로 하여금 꼼짝 못하게 묶어 두는 방식이란 무엇인가. 사람들은 그러한 방식의 하나로 편지 형식을 찾아 내었다. 외로움을 길들이어 사슴처럼 순하게 만들기 위해 발명된 편지 형식이 대량화되어 보급된 것은 저 증기기관의 발명과 앞뒤를 하여서였다. 우편 제도가 확립되어 개인의 사생활에 관한 비밀의 확보가 비로소 제도적으로 가능해졌다. 증기 기관이 경부선을 만들어 낸 것과 이 우편 제도는 이복 형제이다.
조병화의 <차창>이 여행의 형식과 편지의 형식의 결합이라 할 때, 이 말은 곧 조병화의 시가 모더니즘 시운동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사실의 움직일 수 없는 증거가 아닐 것인가. 근대(현대)란 제도적 장치로서의 철도, 우편 제도, 군대 제도, 학교 제도, 의료 제도를 떠나면 결코 파악될 수 없다. 제도적 장치의 힘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모더니즘인 만큼, 모더니즘을 낳은 기반을 살피지 않는다면 모더니즘이 내세우는 외로움의 표정이 붙잡히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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