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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삶에 대한 끝없는 질문의 시 / 趙泰一


글쓴이: 관리자

등록일: 2005-04-10 18:13
조회수: 6859 / 추천수: 120
 
삶에 대한 끝없는 질문의 시/趙泰一(시인)
  --조병화 전집 5권(학원사,1988)에서 부분 발췌

조 병화 시인은 대학 강단에서 오랫동안 시론(詩論)을 강의하고 있음에도 외국의 시론은 물론 한국의 어떤 시론, 다시 말해서 자기 아닌 남의 시론에 전혀 끌리지 않고 오로지 자기만의 독특한 시세계를 구축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말은 남의 생각, 남의 정서, 남의 형식 즉 남의 삶을 대신 살아 주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생각, 자기의 정서, 자기의 형식 즉 자기의 삶을 자기 스스로 책임을 지면서 밀도 있게 살아가고 있음에 다름아니다.
문학이 자아(自我)와 세계와의 관계에서 비롯되고 있다면, 조 병화 시인의 이러한 시적 태도는 논자들에 따라 다소의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조 병화 시인은 자아와 세계와의 관계 즉 자기와 타인과의 관계가 불편한 평행선의 관계가 아니라 조화로운 관계의 끊임없는 모색을 통해 나타나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것은 그의 시가 고독을 고독으로 받아들이면서도 쓸쓸함에 떨어지지 않고 이별을 이별로 받아들이면서도 결코 아픔에 머물지 않는 인간의 성숙한 정신 세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때문에 그의 시는 대결이 아닌 너그러운 화해, 외침이 아닌 조용조용한 대화, 미움이 아닌 애틋하고 따뜻한 사랑의 메시지를 전달해 주고 있다. 그의 시에 있어서 이러한 모습은 어떤 특정한 문예 사조나, 사상, 철학 따위에서 벗어나 인간의 보편적이면서도 진솔한 정신 세계를 일관되게 보여 주는 데서 잘 나타나고 있다. 그에게 있어서 시는 곧 삶이며 시를 쓴다는 일은 곧 살아감의 의미를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그의 시가 추구하고 있는 것, 그의 삶이 보여 주고 있는 것은 인간에 대한 탐구라 할 수 있다. 이 탐구는 고독한 한 인간으로서의 자각과 그 자각 속에서 얻는 자기 확인의 여정(旅程)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보게 된다. 따라서 조병화 시인의 시에서 가장 뚜렷한 특징이 있다면 ‘길떠남’의 세계를 보여 주고 있다는 점이다.
이‘길떠남’의 여정엔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이라든가, 역사적 존재로서의 인간이란 거창한 수식어가 달려 있지 않다. 다만 한 인간으로 자신의 진지하고도 끈질긴 존재 확인의 작업만이 남아 있다.
그의 ‘길떠남’의 배경에는 인생에 대한 보다 진지한 성찰이 내포되어 있다. 이 사려 깊은 사색과 성찰은 곧 “유구한 자연, 변하지 아니하며 변하는 거”에서 보듯이 무한의 자연과 유한의 인간과의 관계를 직시하는 데서 출발한다. 즉 부단히 변하면서도 변함이 없는 무한성 속에서 인간이란 얼마나 보잘 것 없는 존재냐는 자기 확인의 모습을 드러낸다. 이러한 존재 확인은 인간이라는 존재가 결국 자연 속에 살아가는 자연의 또 다른 형상에 지나지 않음을 자각케 하고 있다. 그렇기에 떠남에 있어서의 아쉬움, 아픔…… 그것 역시 사랑하면서 살 수밖에 없다. 이러한 그의 내적 성찰은 “지군 어딜 가나 ‘산 자, 죽는 자의 풀밭’/내일의 어젤, 떠나며 산다”로 타나나고 있는 것이다. 살아 있다는 것, 죽는다는 것은 큰 사건일 수 없다. 죽음조차도 더 이상 그에겐 슬픔이나 비극이 아니다. 인간은 육체를 빌어서 한정된 시간 동안 여행을 하다가 다시 육체를 떠나는 여행자들일 뿐이다. 죽는다는 것은 다만 또 다른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그렇기에 과거라든가, 현재라든가 미래라는 직선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오늘’을 충실하게 사는 것이 참다운 인생임을 보여 준다. 오늘이라는 시간 역시 떠남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오늘을 충실하게 살아가는 모습은 그의 고독 속에서 찾아 볼 수 있다. 그의 고독은 타인과 차단되거나 은폐되어 있는 고독이 아니다. 오히려 타인과의 만남과 작별에서 아쉬움과 아픔 속에서 그것을 받아들이면서 느끼는 고독이 된다. 이것은 우리들 인간이 안고 있는 숙명적인 이별과 그로 인한 아쉬움을 회피하지 않고 오히려 더 뜨겁게 사랑하는 것과 같다. 헤어지는 것이라면, 어차피 혼자라는 것이라면, 만남 또한 그만큼 소중하다는 역설이 된다. 따라서 ‘고독’한 존재로서의 삶은  인간에 대한 따뜻한 애정으로 나타난다.
한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 짧은 한 평생을 살아감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믿음이요 우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우정은 서로 고독한 사람들끼리의 따스한 인간애에서 나오는 것이다. 찬바람이 쌀쌀해지는 가을 저녁, 텅빈 주머니의 쓸쓸함, 그러나 그 쓸쓸함은 쓸쓸함을 아는 사람의 정겨운 목소리에 의해 곧 훈훈함으로 바뀌게 된다. 가을 저녁 뒷골목 대포집 안에서 흘러나오는 이 따스한 정경은 각박한 우리의 삶을 반성케 하는 진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조병화 시인의 이러한 훈훈하고 따스한 애정은 시의 곳곳에서 발견된다. 눈길을 밟으면서 장에 가는 사람에게 주는 세심한 배려를 보여 주는 <일월 장길>이라든가, 초행에 스쳐 가는 사람과의 정겨운 대화를 보여 주는 <해남 기행>등이 그것이다. 이렇듯 인간에 대한 신뢰와 애정은 인간이 고독한 존재라는 것, 그렇기에 사랑으로써만이 그것을 극복할 수 있다는 삶의 철학을 보여 준다. 때문에 인간에 대한 사랑은 어떠한 종교나 철학, 사상을 통해서가 아닌 삶 그 자체에서 우러나온 무조건적인 사랑이다.
그에게 있어 인간의 본질적인 고독은 때때로 시인으로 하여금 한 발자국 비켜서서 바라보게 하고 있다. 인간 현장의 포기로서가 아니라 관조의 세계에서 고독과의 대화를 끊임없이 하고 있는 것이다.
조용한 기간을 찾아 고향에 머물면서 친한 친구에게 아니면 수많은 정겨운 인간에게 띄우는 편지 식으로 서술된 이 시는 그의 인생에 대한 무심(無心)의 경지를 잘 보여 준다. 즉 인간의 유한성을 깨닫는 순간부터 고독은 이미 친근한 벗이 되어 있는 것이며, 죽음이란 단지 또 하나의 예정된 여행으로 받아들여진다. 여행이 항시 마음을 비우고 또 다른 예정을 향해 가듯 인간이라는 유한 존재에 얽매이지 않고 죽음 그 자체를 가슴으로 친근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조병화 시인은 그 어느 누구보다도 많은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다는 말을 앞서 한 바 있다. 이것은 그가 시를 통해서 정직하게 살려는 자신의 삶, 아프게 살아가는 고독, 그리고 정겨운 육성들을 아무런 꾸밈도 없이 진솔하게 그리고 잔잔하게 들려주는 데 있가고 할 수 있다. 인생을 가장 솔직하고 진지하게 사는 사람일수록 거짓되지 않는 시, 거짓되지 않는 시인의 진면목을 쉽게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의 시 전편에 흐르고 있는 고독과 사랑의 목소리는 인간에게 있어 가장 진실된 삶에 대한 질문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란 무엇이며,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이며, 인간을 이루는 본질은 무엇인가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어떤 이념이나 어떤 철학이나 잡다한 어떤 유파를 떠나 자기 삶 자체로서 시를 쓴다는 평소의 그의 말로도 잘 설명된다. 괜히 시가 어려울 까닭은 없다. 오히려 시인은 어려운 인간의 삶을 쉽게 풀어 시인의 다정 다감한 목소리로 들려 주고, 그것을 많은 독자들이 감동한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어디 더 있겠는가. 이처럼 조병화 시인의 괜히 어렵고자 하는 기교를 무시한 무기교의 시가 우리들에게 많은 공감을 주고 숙연한 몸가짐을 갖도록 하는 점은 당연한 결과가 아닐 수 없다. 그의 이러한 예술적인 시각은 시뿐만 아니라 그의 취미 생활을 이미 벗어나 독특한 세계를 구축하여 높은 경지에 도달한 그림이나 서예를 통해서도 엿볼 수 있다.
그는 말한다.
“인간 본연의 그 영역 내에서 인간을 찾았고, 인간의 말을 찾았고, 인간의 생존을 찾았고, 그 종언을 찾았던 것이다. 그래서 내가 바로 도달한 지점이 군중, 군중의 숨은 가슴. 나는 이곳에서, 나의 말, ―인간으로서의 나의 대화, 나의 시를 지금 발견하려고 애를 쓰고 있는 것이다. (《한국 전후 문제 시집》1963, 신구 문화사)
그렇다. 그는 일상성에서 혹은 삶의 현장에서 결코 비겨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오늘도 군중 속에서 군중의 가슴 한복판에서 생명의 씨앗으로 거듭 움트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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