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사랑의 시인 조병화문학관입니다
 
 

제목: 조병화의 시세계 / 유종호


글쓴이: 관리자

등록일: 2005-04-10 18:10
조회수: 6709 / 추천수: 130
 
1.조병화의 시 세계/유 종 호(평론가,대한민국예술원 회원)
  --조병화 전집 10.(학원사, 1988)에서 부분 발췌

  조병화 시인의 시적 노력의 한 중요한 특징은 그가 말하듯이 쓰련다는 자세로 일관해 왔다는 점이다. 이것은 이 시인이 산문을 지향해 왔다는 것이 아니고 자연스러움의 견지를 변경할 수 없는 자기 부과적 계율로 삼아 왔음을 말하는 것이다. 그대로 ‘말하듯이 쓰는 시’를 위한 역정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이 점 가장 예시적인 것은 이 시인이 즐겨 편지체의 시편을 쓴다는 사실일 것이다. 한 시인의 가능성과 잠재 성장률이 가장 잘 숨겨져 있는 것이 보통 처녀 시집인데 조병화의 처녀 시집도 예외가 아니다. 《버리고 싶은 유산》에는 건강한 젊음의 서정이 엽서 편지 형식으로 토로된 〈바다의 답서〉,〈옛 엽서〉등의 시편이 있다. 이 시들은 이 시집에서도 가장 사랑스러운 작품들에 속하지만 편지임을 직접 드러내지 않았으면서도 실은 편지체인 작품이 또 있다. 시인 자신은 큰 애착을 나타내지 않는 듯하지만 진솔한 약년기의 수작인 〈초상〉을 읽어 보기로 하자.

  내가 맨 처음 그대를 보았을 땐
  세상엔 아름다운 사람도 살고 있구나 생각하였지요.

  두 번째 그대를 보았을 땐
  사랑하고 싶어졌지요

  번화한 거리에서 다시 내가 그대를 보았을 땐
  남 모르게 호사스런 고독을 느꼈지요.

  그리하여 마지막 내가 그대를 만났을 땐
  아주 잊어버리자고 슬퍼하며
  미친 듯이 바다 기슭을 달음질쳐 갔습니다
                                          -〈초상〉

  그러니까 말하듯이 시를 써 왔다고 할 때 그것은 이 시인에 있어서 편지 쓰듯이 시를 써 왔다는 말로 바뀌어질 수가 있다. 편지를 쓴다는 것은 사무에서 염서에 이르기까지 구체적인 대상에의 통화이며 호소이며 의사의 전달이다. 따라서 판독 불가능한 유사 암호 편지는 본질적으로 자기 부정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어찌하여 이 시인이 판독 불능의 어휘 떼들이 창궐하던 시기에 철저하게 한 시대의 폐습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던가 하는 그 사단의 핵심을 이 사실에서 읽어 낼 수 있다. 최근의 시편에서 말하듯, 편지하듯 쓴다는 회화와 구어에의 접근은 그 극치에 달해 있고 거기서 시의 생동감을 얻고 있다. 이 점 다소 당돌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최인호 등의 청춘 구어체의 문체적 연원은 의외로 조병화 시일는지도 모른다.
  말하듯, 편지하듯 씌어진 것이 조병화 시의 형태적 특징이라면 이 진솔한 형태와 안팎 관계에 있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나날의 삶 속에서 숱하게 겪게 되는 극히 통상적인 정감 경험의 토로이다. 예외적인 상황 속에서 이상 체험이나 극도로 고양된 순간의 의식 체험을 강렬하게 표현하는 법이 거의 없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범상한 사람들을 위해서 주어진 범상한 감정과 의식의 진솔한 토로이다. 세금을 내고 수속을 하러 관청엘 찾아다니는 날의 절망적인 피로감, ‘우거진 군상 속을 이단처럼’ 걸어갈 때 느끼는 까닭없이 사람들이 무서워지는 감정, 쓰기 싫은 이력서 쓰기, 부부 싸움을 포함한 집안 싸움, 짐짝 취급을 받고 합승 타기, 술집 여자의 건주정, 지방 선거가 있었던 마을 얘기 등 우리의 하고많은 나날의 결을 이루고 있으면서도 시의 제재로 처리되는 법이 없는 것들이 대담하게 기용되고 있다.
  일상의 범상한 사람살이와 범상한 정감이 말하듯, 편지하듯, 토로되어 있는 그의 시는 따라서 누구에게나 쉽게 호소한다. 조병화 시의 친화적 호소력은 그러나 이 시인을 위해서 순기능만으로 작용하지 않는다. 그처럼 많은 독자를 가지면서도 일변 프로들의 경원을 받아 온 시인도 드물 것이다. 그러나 덕은 외롭지 않고 모름지기 이웃이 있기 마련이라는 잠언은 비단 유교적 일상 덕목에 그치지 않고 사람다운 삶을 가능케 하는 공동체의 기초가 된다는 것을 시인할 때 우리는 친화적 호소력이 다름아닌 ‘덕’의 문학적 대응물이란 점도 인정하게 된다. 요컨대 친화적 호소력이란 권장되어야 할 덕목인 것이다.
  도회의 고독한 군중 속을 걸어가면서 얘기하듯 노래하는 조병화 시를 되풀이해서 사람은 외로운 존재라고 얘기한다. 인생은 짧고 고독은 길다고 적는다. 사람은 저마다 외로운 외딴섬이라고도 적는다. 그는 또 사람들이 모여 사는 세상살이를 ‘낙엽끼리 모여 산다’고 적고 있다. 전통적으로 낙엽은 사람살이의 짧음과 세상일의 덧없음을 나타내는 상징인데 이 전통적 상징에 의탁해서 그는 이 세상을 규정하고 있다. 젊은 시절 사람살이의 짧음을 적은 그는 최근에 와서 어머니를 통해서 불교적 무상관을 그대로 포용한다.

  그냥 사는 거다
  슬픈 거, 기쁜 거
  다
  너데로 그냥 사는 거다.
  그게 세상
  잠간이다.
      -〈눈에 보이옵는 이 세상에서〉

  사람들이 죽음에 관해서 가장 많이 생각하는 것은 죽음이 아직 멀다고 생각되는 시절인 것 같다. 죽음이 아주 가까워졌을 때 사람들은 이미 죽음을 길게 생각지 않는다. 그것은 사람들을 덮치려 드는 너무나 생생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젊은 날의 죽음에의 사색은 이 시인으로 하여금 삶을 단 ‘하루만의 위안’으로 규정케 한다. 그리고 이 생각은 수정 없이 유지된다.
  사람의 일생이 짧은 것은 사실이되 목숨 자체가 겨우 ‘하루만의 위안’이라는 게 진정 실감이라면 문제는 심상치 않다. 이러한 생각은 망연히 모든 인간의 노력이 필경은 도로이며 따라서 사람들이 악착같이 갈구하며 땀 흘려 일하는 것 또한 필경은 허사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유도하게 마련이다. 그것은 체념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워지는 것이겠지만 너무나 일찍이 획득된 이러한 사생관은 체념의 전체가 되는 소망조차 설자리를 잃게 만든다. 성서의 문학성 아니 구한역 성서의 비길 데 없는 아름다움을 가르쳐 주는 이 시인의 제12시집 《쓸개포도의 비가》에서 우리는 성서의 말로 엮어진 불교적 무상감과 체념 구성을 보게 된다.

  소망같이 피곤한 것이 어디 있으랴.
  소망같이 어두운 것이 어디 있으랴.
  소망같이 쓸쓸한 것이 어디 있으랴.
  소망같이 외로운 것이 어디 있으랴.
  풀 곁에 흙이 있듯이
  너와 나는 그렇게  있다 가자.
                      -〈소망〉
  이 시인이 인생은 짧고 고독은 길다고 말할 때 우리는 그것이 몸서리치도록 처절하거나 다스릴 수 없는 폭동과 같은 고독이 아니라는 것을 예감한다. 그것은 처음부터 순치와 애완과 애무가 가능한 적당히 귀엽기까지 한 고독이다. 그것은 삶을 ‘하루만의 위안’이라고 보는 태도와 밀접히 연관되어 있으며 그 점이 이 작품을 이 시인의 원체험이 담겨 있는 극히 중요한 전거라고 해야 할 것이다. 적당한 선에서 순치가 가능한 슬픔과 외로움과 쓸쓸함이 이 시인의 주제인 것이다.

    
임충빈   2006-12-28 13:14:36 [삭제]
편운 선생님의 숨결이 느껴지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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