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사랑의 시인 조병화문학관입니다
 
 

제목: 순수고독 순수허무 제759호 (시로 쓰는 자서전 세월은 흐른다)


글쓴이: 관리자

등록일: 2021-06-07 17:50
조회수: 65
 
21 花郞草(화랑초)

        태백산맥이 줄기진 야산에 누워
        푸른 하늘을 덮고 화랑을 피운다

        그 맑은 우울한 일기들이
        부산 가로에서
        온종일
        알제리안 파이프를 물고
        빈곤한 철학을 팔고 있을
        이 순간에

        눈 내리는 능선엔
        생명처럼 포성이 스치고 간다

        인생의 황혼처럼 흐리던 거리
        흐르는 밀도 속에 끼여
        그 많은 화려한 옷자락들에
        가슴을 상쳐

        슬픔을 잃은 가슴을 안고
        전토로 돌아오던 그날을 기억한다

        생명을 위협하는 조국이 싫다는
        닥터 김은 어디로 갔나,

        작별이 아닌 작별 속에
        준이나, 진이나, 원이나,
        원거리상의 사랑들처럼 저 멀리 간다

        포성이 우거진 능선을 타고
        나의 일과를 생각한다

        유엔군 보급 트럭이 북진하는
        산맥과 산맥에
        흰구름이 뜨고

        어젯밤 싸우고 돌아온 전우들과 나란히
        건초를 비비고 화랑을 피운다

        회상이 없는 사나이들처럼
        태백산맥이 줄기진 야산에 누워
        그것이 생명들처럼 스치는 포성을 듣는다

        아무 말 없이.

                                         시집 『貝殼의 寢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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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에 피난을 가선 한때 나는 아무런 일도 없이 부산 광복동, 남포동, 거리를 그저
이리저리 쏘다니며 하루를 보내곤 했습니다. 학교도 시작이 안 되고 해서 본의 아닌 룸펜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광복동의 우리들 피난 예술인 아지트는 ‘금강’ 다방이었습니다. 이곳에 가면 문인, 화가,
음악가, 연극인, 신문기자, 잡지기자 들이 아침부터 우굴우굴했습니다. 김환기, 이중섭,
이인범, 이해랑, 김광주, 김소운, 이진섭, 윤용하, 임궁재, 박연희⸱⸱⸱⸱이러한 이름들이
생각납니다.
  우울하던 시절의 위안의 오아시스라고나 할까, ‘금강’ 다방은 당시 부산의 명물이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길 건너 ‘밀다원’은 김동리, 황순원, 조연현, 박목월⸱⸱⸱⸱⸱등등 소위 한국문인협회의 주축을 이루고 있던 문인들의 단골 다방이었습니다.
  이러한 무료하고 따분한 나날을 보내던 중 어느 날 “철도연대로 종군해 볼 마음은 없느냐?” 하는 청이 들어왔습니다. “조건은?” 하고 물어보았습니다. “다소간의 용돈과 한 달에 쌀 한 가마, 정훈부군속”이라는 말에 나는 응하기로 했습니다. 한 달에 쌀 한 가마라는 데 더욱 마음이 갔습니다. 가족들에게 보탬이 되니까.
  철도연대는 경상북도 영천에 있었습니다. 정훈부를 새로 만들고, 철도연대가를 만들고, 정훈적인 일을 하곤 했습니다. 철도연대가의 작곡은 당시 이화여자대학 작곡과 교수로 있던 김순애 교수가 했습니다.
  그 당시 부산엔 투박한 ‘알제리아’라는 파이프가 나돌고 있었습니다. 매일같이 다방에서
이 알제리아 파이프를 물고 문학 이야기, 인생 이야기를 하던 비생산적인 하얀 인텔리 문인들, 그와는 반대로 일선에선 사느냐, 죽느냐, 미느냐, 밀리느냐, 하는 심각한 생존의 전투병들, 이러한 시국상황 속에서 나의 청춘은 일그러져가고 있었습니다.
  당시 군인들에겐 ‘화랑초’ 담배가 보급되어 있었습니다.
  나는 이 ‘화랑초’ 담배를 피우며 밤이면 침대에서 채정근 번역, 레마르크 원작의 『개선문』을 열심히 읽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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